■ 도쿄타워
스물한 살 대학생 토오루(오카다 준이치)는 유명 잡지사 편집장을 엄마로 둔 덕에 종종 화려한 파티에 초대받는다. 허울뿐인 만남이 오고 가는 파티장에서 그는 구석에 혼자 앉아 샴페인을 들이켜거나 주변 야경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함을 달래고자 간 파티에서 어머니의 지인인 시후미(구로키 히토미)와 처음 마주치며 토오루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다.
아오야마에 위치한 인기 편집숍 주인이자 잘나가는 CF 감독을 남편으로 둔 시후미는 사랑도 열정도 없는 비참한 결혼을 간신히 유지하며 사는 40대 여자다. 그에게 있어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패션계 인사들이 벌이는 파티는 준비해 둔 멋진 옷을 입고, 준비해 둔 미소를 날리는 의미 없는 노동일 뿐이다. 그런 그의 앞에 토오루가 나타나자 ‘파티용 미소’가 사라진다. 평소 알고 지내던 잡지사 편집장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토오루를 소개하는 순간 시후미의 심장이 요동치고, 뭔가 강렬한 힘에 사로잡힌 듯 사지에 힘이 빠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이만큼 서로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만남이 시작되고, 함께 밤을 보낸 후 시후미는 간절한 눈빛으로 토오루에게 “이렇게 살다 죽는 게 싫어서 난 널 만나”라고 묘한 고백을 한다. 시후미에게 토오루는 지리멸렬한 인생에 내려온 동아줄 같은 존재이거나 아니면 지루하게 살다 죽긴 싫어서 그냥 만나는 상대일 것이다. 반면 토오루에게 시후미는 “아쿠마(악마) 같은 존재”다. 토오루는 시후미를 삼키고 싶지만 두렵다. 그에게 영혼을 바치고 나면 자신을 잿더미로 만들 것 같은 마력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전부를 던져 사랑하게 됐을 때 부족할 것 없는 이 여자는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시후미와 토오루의 강렬하고 간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도쿄타워’(감독 미나모토 다카시·2004년·사진)는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소설 ‘도쿄타워’는 ‘냉정과 열정 사이’로 큰 인기를 모은 가오리의 서정적이면서도 수려한 문장이 담겨 있다. 이런 분위기는 영화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시후미와 토오루의 터질 것 같은 욕정의 목덜미를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유부녀를 유혹하는 청년의 불륜담(不倫談)도, 잘나가는 중년여성이 청년의 젊음을 착취하는 무용담도 아니다. 사력을 다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불운한 남녀의 간절함과 필연적인 선택을 지난밤 꾸었던 꿈처럼, 혹은 언젠가 본 것 같은 데자뷔처럼 아름답고 슬프게 읊조리는 연가(戀歌)다.
시후미와 토오루의 관계는 시후미의 남편과 토오루의 엄마에게 발각되며 파국을 맞는다. 토오루는 파리로 강제 유학을 떠나고, 절망한 시후미는 목숨만큼 중요한 편집숍 문을 닫는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을 만나서는 안 될 운명을 지닌 비참한 연인으로 내던지지 않는다. 껍데기뿐인 아내와 살 자신이 없어진 시후미의 남편은 몰래 알아낸 토오루의 파리 주소를 시후미에게 건넨다. 자신이 먼저 서명한 이혼서류와 함께….
두 사람은 파리 에펠탑 앞에서 재회한다. 시후미를 본 순간 해골처럼 마른 토오루의 얼굴이 터져 나오는 눈물로 벌게진다. “우리에게 다음 역은 없다”며 선을 긋곤 했던 시후미에게 토오루는 다음 역이 된다. 그들은 곧 도쿄로 돌아갈 것이다.
자신들만의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밤이 새도록, 인생이 새도록 사랑을 나눌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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