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분노·욕설 배설구’로 전락하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축구 대표팀의 경기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해서, 익명의 청원자들이 화풀이 막말로 도배하다시피 한 것이 가까운 예다. 지난 24일 새벽 멕시코와의 조별 리그 2차전 경기에서 1 대 2로 패배한 직후부터 장현수 선수를 향해 쏟아진 인신 공격만 해도 26일 현재 100건이 넘었다. 태클을 시도하다 공이 손에 맞아 실점으로 이어진 페널티킥이 선언됐다는 이유로, ‘장현수 문신한 팔을 제거해 주세요’ ‘가족까지 추방해 달라’ 등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섬뜩한 극단적 비방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8일 스웨덴에 0 대 1로 졌을 때도 ‘스웨덴과 전쟁을 청원한다’ ‘페널티킥 선언 주심을 사형에 처해 달라’ 등 황당한 청원이 1000건을 넘었다. 심지어 한국에 진출한 스웨덴 가구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요청’도 수십 건이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며 청와대가 지난해 8월 개설한 국민청원 게시판은 이처럼 ‘온라인 테러 공간’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피해 당사자와 가족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국가 망신까지 자초하는 일도 빈발한다. 그래서 일각에선 게시판 폐지를 촉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담당자인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은 지난달 30일 “분노를 털어놓을 곳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청와대는 “현재로선 운영기준 변경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식으로 여전히 오불관언이어선 안 된다. 계속 운영하더라도 실명제가 정도(正道)다. 그러잖으면, ‘악플’이 ‘선플’을 몰아내는 결과를 초래함은 물론, 폐해가 적나라한 현행 익명제의 저의(底意)에 대한 의심까지 더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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