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자기 등교 못하게 된 제자
1년뒤 ‘삶 놓고싶다’며 낙심
‘포기하지 않게 돕겠다’ 결심
방과후 따로 만나 공부 시작
아픔 함께하며 졸업 이끌어
“아파서 등교 않는 학생 많아
조금만 관심 주면 큰힘 얻어”
“아픈 제자를 위해 제가 ‘나머지 공부’를 맡겠다고 자청했죠. 또래 친구들과 학교에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 없는 제자에게 교실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부도 도와줬습니다. 학업은 물론 병마와의 외로운 싸움도 절대 포기하지 않게 돕고 싶었거든요.”
박희영(48) 서울 거원초등학교 교사는 지난 2014년 2학기를 앞둔 여름방학 때 한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김수연(13·가명) 양의 부모였다.
“선생님, 수연이가 학교에 갈 수 없게 됐어요. 고열에 감기가 심해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정밀검진을 받아 보라고 하네요. 백혈병이라고 합니다….” 학부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박 교사는 평소 자신을 잘 따르던 수연이 소식을 듣고는 큰 충격에 빠졌다. 방학이 싫다고 할 정도로 학교를 좋아하고, 누구보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수연이가 길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당장 내일부터 학교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놀랍고 가슴이 아팠어요. 수연이의 병세가 급속히 진행돼 골수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수술 부작용까지 생겨 위험한 상태였어요. 하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정말 속상했습니다. 병문안을 가거나 가끔 통화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수연이는 발병 초기에 병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상실감이 무척 컸습니다.”
그렇게 약 1년이 흘렀다. 박 교사는 2015년 말 아파하던 수연이가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심지어 ‘삶의 끈을 놓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두 번째로 큰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박 교사는 편지를 통해 수연이를 위로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학생을 위해 수업시간 외에 별도로 시간을 내기로 했다.
“뭐라도 돕고 싶었어요. 전화나 편지보다도 얼굴을 맞대며 대화도 하고, 제가 학업을 도울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봤습니다. 일단 수연이가 좋아하던 수학, 사회, 과학을 가르쳐주기로 했고, 나름대로 ‘특별지도계획안’도 만들어 둘만의 ‘방과 후 나머지 공부’를 계획했어요. 수연이는 저와 함께 공부는 물론 학교 얘기를 하며 떠드는 시간을 참 좋아하더라고요.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눈빛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면 매일 교실에서 보는 학생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죠.”
박 교사는 이후에도 아픈 수연이의 담임을 맡아 지도하길 원했다. 수연이가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차례로 한 학년씩 올라가며 담임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2014년에 처음 만난 박 교사와 수연이는 결국 한 학년씩 함께 올라갔고 올해 2월 거원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수연이는 졸업을 앞두고 ‘꼭 졸업앨범을 갖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학교에 거의 나오지 못하니 졸업앨범도 촬영할 수 없었고, 졸업식에 참석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죠. 그래도 제가 담임을 맡은 거원초등학교 학생이잖아요. 증명사진이라도 받아서 졸업앨범에 수연이의 얼굴을 넣기로 했죠. 졸업앨범에 모르는 얼굴이 있는 걸 본 다른 학생들이 ‘선생님, 얘는 누군데 앨범에 있어요?’라고 물어서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지만, 이번에 함께 졸업하는 우리 반 친구라고 설명했죠.”
박 교사는 수연이가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수학 과목의 공부를 돕고 있다. 수연이는 그런 박 교사에게 늘 감사 표현을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제자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제 의지만으로 수연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게 절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저를 믿고 잘 따라와 줘서 정말 고맙죠. 4학년 때도 한 차례 위기를 겪으며 ‘포기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폐 이식을 기다려야 하는 상태지만 꿋꿋이 버티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합니다.”
박 교사는 아파서 학교를 나오지 못해 학교를 그리워하는 수많은 학생이 있지만, 이에 대한 배려나 제도적 지원이 부족한 실태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저도 수연이를 맡으며 알게 됐지만, 생각보다 많은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나올 수 없더라고요. 학교가 있는 서울 송파구에만 학업을 중단하거나 병원에서 공부해야 하는 학생이 50명이 넘어요. 이 아이들은 학교를 그리워하면서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해해요. 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같은 반 친구들이 아픈 친구에게 관심을 두고 학교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면 좋겠어요. 병실에 있는 아이들은 작은 관심만으로도 소속감을 느끼고 큰 힘을 얻을 수 있거든요.”
박 교사는 수연이가 졸업한 뒤엔 초등학교에 남아 다른 제자들에게 애정을 쏟고 있다. 편지로 소통하던 방식을 이어가 지금은 매주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쓴다.
“저도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은 정말 소중한 존재예요. 그런 소중한 자녀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도 얼마나 자녀의 학교생활이 궁금하고 애간장이 타겠어요. 그 마음을 이해해 매주 교실에서 있었던 일과 제 생각을 담아 학부모님께 편지를 써요.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학생·학부모·교사라는 세 주체가 서로 이해하고 참고 배려한다면 아이도 밝고 건강하게 자랄 거라 믿습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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