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의 금리 인상, 미·중 무역갈등 확대, 경기 후퇴 우려 등이 세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대내외적 위험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가계부채 억제 및 부동산 안정화 대책 등으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1998년 외환위기와 2011년 부실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뼈아픈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후적 대응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파산하면서 대량실업이 발생했고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해외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후적 대응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젤 Ⅲ(은행 자본건전성 강화), 지급능력 Ⅱ(SolvencyⅡ) 등 금융회사 부실이 더는 납세자의 부담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금융회사에 대한 사전적 건전성 감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사전적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금융위기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을까? 각국은 경험을 통해 감독적 대응만으로 금융위기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가 자발적으로 위험을 감축하도록 유인 체계를 구축, 운영 중인데 대표적인 것이 차등보험료율제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 저축대부조합(S&L)의 대규모 부실 사태를 겪은 후 1993년에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차등보험료율제를 도입했다. 현재 미국을 포함해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25개국이 이 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차등보험료율제는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건강 상태, 사고율 등을 보험료에 반영하는 것과 유사하다. 금융회사의 부실 위험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부과하면 과도한 위험 추구 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에 차등보험료율제를 도입했다. 현재 예금보험공사는 금융회사의 위기관리 능력, 건전성 관리 능력, 손실회복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차등평가)해 3개 등급으로 나눠 보험료를 차등하고 있다. 현재 예금보험료율의 차등 폭은 표준요율의 ±5% 수준이다. 그러나 2019년부터 ±7%, 2021년부터는 ±10%로 확대될 예정이므로 금융회사들의 관심은 해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이에 차등평가 제도 운영과 관련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금리 수준의 변화, 가계부채 문제 등 금융시장의 잠재위험 요인과 바젤 Ⅲ 등 규제 변화를 시의적절하게 반영해 평가의 신뢰성과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 둘째, 건전 경영 유도라는 차등평가제의 취지를 살려 원칙적으로 절대평가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현재 경기 순응성 문제 등으로 1·3등급 수를 50%로 제한하는 것은 자발적인 위험 감축이라는 취지에 다소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기금의 건전성이 악화할 경우 특별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는 보완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조해 절대평가 강화 보완책을 함께 마련해 나가야 한다. 셋째, 등급평가 기준은 환경 변화를 반영해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은행·저축은행·보험 등은 각각 위험요소와 환경이 다르므로 업권별 특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차등평가는 매년 수십만 명이 응시하는 수능에 비유할 수 있다. 수능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문제 출제와 시험 진행에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는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차등평가가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하는 평가로서, 기준의 객관성과 절차의 공정성을 인정받지 않고는 제도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다. 한번 신뢰를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을 담당자는 항상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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