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대타협’으로 포장됐으나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는 ‘불완전한 타협’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대로 세월만 보낸다면 결국 ‘실패한 타협’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나의 우려는, 정상회담 후 3주가 지나면서 미·북 회담이 ‘비핵화 협상’이라기보다 ‘핵군축(核軍縮) 협상’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관심은 북한의 핵실험장 폭파와 미군 유해 송환 등에 쏠리고, 북한의 핵 보유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미 본토에 대한 북한 미사일(ICBM) 위협만 제거하면 된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예정됐던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이런 가운데 하나씩 취소되고 있다. 북한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으나 장기화하면 한·미 동맹의 위상은 현저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의 우려는, 우리의 대북 정책이 ‘포용(包容)’에서 ‘유화(宥和)’로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이 없는데도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공동연구조사단 구성 등 남북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유엔 대북 제재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핵 불균형의 상황에서 유화책으로 여겨질는지 모른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히틀러의 의도에 대한 서구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역설했다. 당시 서구 주요국이 히틀러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을 소비하기보다는 독일의 군사력 증강을 견제하는 데 힘썼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편, 그는 독일의 국력이 증가함에 따라 히틀러의 의도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그 국가들이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유화정책이 실패하는 것은, 상대방의 현상 타파 의도를 간과해 협상 과정이 지속되면서 세력 균형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세력 균형의 변화를 인식하면서도 상대국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매몰돼 적절한 세력 균형 수행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 핵미사일 개발에 직면해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은 지나친 유화적 측면을 가져선 안 된다. 북한이 한국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추구해 나간다면 한국은 자체 군비 증강 또는 한·미 동맹 강화를 통해 북한을 견제해야 한다.
합리주의와 물질주의로 대변되는 실증주의 사고는 객관적 설명 방식으로, 상대주의와 관념주의로 대변되는 주관적인 설명 방식인 해석주의 사고와 대별된다. 전자의 사고에 따르면 김정은의 선택은 핵무장·경제발전 병진정책이고, 핵무력은 포기할 수 없는 정권 목표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도 사실상 체제 인정일 뿐이며 정권 안보를 보증하지 못한다. 거래의 등가성이 확증 안 되는 비핵화 협상이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겠는가.
결국, 낙관적 결과는 후자의 사고에 의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신사고’라 할 수 있는 북한 정권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고 유도하며 기다려보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 신사고가 존재하고, 이를 수행할 북한 정권의 의도를 신뢰한다 할지라도 한반도 역학 구도의 변화에 따라 그 의도는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운명을 김정은의 선택에 맡기는 우(愚)를 범하려는가. 앞서 언급한 키신저의 견해를 이해한다면 지금 그 교훈은 자명하다. 북한 비핵화(非核化)를 위해 북한의 의도를 통제하고, 북한에 대한 협력이 유화 아닌 포용으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은 우리의 국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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