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1000년을 지배하던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것은, 도전과 혁신정신으로 무장하고 공짜를 바라지 않았던 신흥 계급의 열정이었다. 역사는 그들을 부르주아라 부른다. 그들은 이성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를 인간 정체성의 본류로 삼았다. 이성의 힘으로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그들은 절대군주의 변덕스러운 권위가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한 객관적인 법(法)을 국가 통치의 기둥으로 우뚝 세웠다. 법치주의 시대가 왔고 이것이 보수주의(conservatism)의 시작이었다.
보수주의는 법치, 피와 땀, 노력을 생존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신념이다. 보수주의는 국가란 섬세한 법률 체계를 바탕으로 한, 어떤 정체성을 가진 영혼이 있는 실체라고 믿는다. 보수주의는 국가를 마치 기계나 동물을 상대하듯이 한꺼번에 모조리 없애고 다시 만들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수주의는 변화가 항상 유익한 개혁이 아닐 수 있음을 경계하고, 어느 정권의 급작스러운 개혁이 사회 진보를 알리는 횃불이 아니라, 대화재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보수주의는 때로 수구세력으로 비난받지만, 참된 보수는 기존의 질서, 관습, 선조의 피와 땀이 현재의 밑바탕임을 인정하고 ‘좋은 것은 지키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사고다.
법치주의는 보수의 핵심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그 중심에 있다. 그런데 인류는 법의 이름으로 무수한 법치 파괴를 자행했다. 법을 수단으로 삼아 통치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스탈린의 철권통치도 법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도 법을 동원해 자행됐다. 법을 수단으로 삼는 ‘법에 의한 지배’는 자연법 위반인 불법(不法)과 실정법 위반인 위법(違法)에서 명백해진다. 대표적으로 살인, 강도, 강간은 자연법 위반의 불법이다. 그러나 ‘강요, 직권남용, 업무상 배임 등’은 인간이 만든 실정법 위반, 즉 위법행위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는 불법이 뿌리내리지 않는 사회다. 인위적으로 만든 죄를 가지고 단죄하는 위법범죄 처벌이 많은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법치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절차적 정의는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예컨대, 전임 정권의 잘못은 처벌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통치행위를 기계적으로 쪼개어 사법 단죄하는 것은 법치 파괴이고, 법에 근거하지 않고 사후적으로 만든 과거청산위원회 같은 조직이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내용은 불법이라는 것이 법치의 정신이다.
또한,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이 ‘과학기술 혁신과… 국민경제의 발전’(제127조)을 선언하고 있음에도 수십 년 피땀의 원자력 발전을 쉽게 폐기하는 것이나, 평화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자유 통일’(제4조)이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모두 헌법 위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정부나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정권을 잡은 것이지, 결코 어떤 혼이 있는 국가 그 자체를 접수한 것은 아니다. 이에 미국 헌법은 인민주권과 국민주권을 명백하게 구별한다. 인민주권은 현재 살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인 주권자로 보는 전체주의적 주권관이다. 반면에 국민주권은 현재 살아 있는 국민뿐만이 아니라, 이 땅의 기틀을 다진 선조들, 그리고 이 땅을 물려받을 후손들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국가 정체성으로서의 주권을 의미한다. 인민주권은 과격하고 흥분하기 쉽지만, 국민주권은 냉정하다.
론 풀러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말한 바와 같이 “도덕성이 결여된 법 집행은 국가폭력”으로, 장기적으로는 국가 발전의 장애 요소라는 사실을 국가지도자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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