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에 승부 거는 文정부
脫규제 의욕에 참여연대 제동
4차 산업혁명서 뒤처질 처지
文대통령 ‘신자유주의’ 부담
혁신성장이 지금 최선이라면
진보진영과 不和도 감수해야
문재인 대통령이 “답답하다”고 한 정확한 속내는 여전히 묘연하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범정부 회의가 내용 미비로, 그것도 불과 3시간 전에 취소된 것은 대형 사건에 속한다. 청와대는 ‘속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규제혁신은 구호에 불과’한 만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 성과를 만들어 보고하라’는 문 대통령의 얘기를 전했다. 이런 얘기라면 회의 석상에서 직접 하면 될 일이다. 대통령이 직접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주재하려는 것도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질책하고, 왜 진척이 없는지 토론해 해법을 찾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예 무산시켜버린 건 평소 문 대통령 스타일이 아니다.
이날 회의 안건엔 ‘빅 이슈’ 2건이 올라 있었다. 인터넷 전문은행과 빅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 방안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꼭 필요하지만, 각각 은산분리, 개인정보 규제에 막혀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재벌이 은행업까지 독점할 것” “개인정보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며 반대한다. 실제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회의 취소 다음 날 이 두 가지 사안을 ‘과거 정책으로의 회귀’ 사례로 언급하며 저지에 앞장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지지세력이 극력 반대하는 문제를 공개 거론하기가 껄끄러웠을 수 있다.
문 정부의 혁신성장과, 그 전제로서 규제개혁은 사실 반쪽짜리에 가깝다. 문재인 정권을 형성하는 주축의 ‘재벌 기피증’은 여전하다. 그래서 대기업에 관한 한 규제를 풀어주기보다는 ‘공정경제’를 앞세워 외려 덧붙이는 형국이다. 혁신국가는 기업가가 제약 없이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발휘하는 나라다. 규제 혁파에 대·중소기업, 신·구 산업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문 정부의 탈(脫)규제는 ‘규제 샌드박스’를 앞세운 신산업 벤처로 폭을 줄였다. 그나마 신산업 부문마저도 반대에 부닥쳤으니 답답할 것이다.
규제 개혁에 관한 한 관료는 주체보다는 대상이다. 관성을 좇는 관료가 기존 판이 바뀌는 상황을 반길 리 없다. 규제 혁파는 비관료 집단인 청와대 참모가 정권 명운을 걸고 공격적으로 해치우는 게 유효하다. 정치적 설득·담판에도 적합하다. 그러나 청와대 경제팀이 규제혁신에 관해 특별히 언급한 기억이 없다. 소득주도 성장 비판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나서던 그들이다. 참여연대 출신을 대거 권력 핵심에 받아들인 문 정부를 참여정부에 빗대 ‘참여연대 정부’로 부르기도 한다. 참여연대가 문 정부 규제개혁을 비판하는 상황은 참여연대 OB 대 YB의 대결보다는 협공처럼 읽힌다.
문 대통령은 2011년에 쓴 ‘운명’에서 ‘참여정부는 신자유주의’라는 진보 진영의 비판에 적극 해명했다. 출자총액제한·금산분리 등 시장규제를 고수했고, 민영화와 노동 유연화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정책과 발언을 두루 살펴보면 이런 진영논리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것 같지는 않다. “규제혁신은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까지 한 문 대통령의 혁신성장 독려가 어딘지 겉도는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시작한 것도, 혁신성장을 주창하는 것도 닮았다. 하지만 방법론과 성과에선 판이하다. 마크롱은 철도노조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독점체제를 깨뜨렸다. 정부가 가진 공기업 지분 150억 유로(약 20조 원)어치를 팔아 혁신기업을 키우기로 했다. 민영화 신호탄이다. 공무원 일자리는 12만 개 줄일 계획이다. 노동개혁 없이 혁신경제는 없다는 그의 소신도 관철했다. 구글·페이스북·IBM 등 실리콘밸리 스타 기업들의 투자 유치는 프랑스가 글로벌 혁신경제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면서 따라온 과실이다. 하나하나가 우리와 다른 길이다.
문 대통령의 혁신성장이 추진력을 얻으려면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야 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말대로 “지난 4년간 38번 건의했다”면 규제개혁 해답은 나와 있다. 관건은 용기를 내는 것이다. 마크롱이 그랬듯 규제개혁으로 가는 길목마다 막아선 이해집단, 관료와 정치생명을 건 담판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승부처가 이념형 규제다. 대통령 지시에도 관료들이 머뭇거린 이유가 있다. 혁신성장이 국민의 삶을 끌어올릴 최선의 방책이라면 진보 진영과의 불화(不和)도 감수해야 한다. 문 대통령 뒤엔 높은 국민 지지율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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