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서 구제하라 했지만
연금公은 판결 이행안해
‘의무이행’빠져 무용지물


“행정청의 처분을 바로잡아달라”며 법원에 내는 행정소송이 ‘반쪽짜리’ 권리 구제에 그치고 있다. 정부·행정부서가 국민의 기본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처분에 대해 법원이 ‘취소하라’고 할 수는 있지만, ‘의무를 이행하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수차례 소송에만 매달려 살아야 하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이 행정청에 의무를 부과할 수 있게 하는 의무이행소송제를 도입해 개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실제로 행정기관의 뻣뻣한 태도 때문에 행정소송에서 이겼는데도 신청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소송을 반복해야 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유모(53) 씨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번의 행정소송을 치러야 했다. 공무원연금공단이 법원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장해연금의 지급기준이 되는 장애등급을 깎았기 때문이다. 군무원이었던 유 씨는 1994년 업무상 열린 축구 경기 중 공중볼을 처리하다 그대로 땅에 떨어지면서 심한 척추디스크를 앓게 됐고, 2000년 법원은 유 씨가 장애등급 8급이라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공단은 2년 뒤 유 씨가 8급보다 낮은 11급이라며 장해급여를 깎았고, 심지어 2007년에는 유 씨의 장애등급을 14급으로 더 내린다고 결정했다. 결국 유 씨는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다시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유 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관계자는 4일 “의무이행소송이 도입됐다면 유 씨는 한 번의 소송으로 모든 분쟁을 해결할 수 있고 공단도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체계인 일본·독일·대만 등 해외에서는 모두 의무이행소송제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7년, 2011년, 2013년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거나 입법예고됐으나 번번이 ‘행정부의 권한을 사법부가 침해하게 된다’는 주장에 가로막혔다. 현재는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행정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행정소송법은 1984년 제정된 이후 30년 가까이 별다른 정비가 이뤄지지 않아 왔다. 한 고위 법관은 “삼권분립에 위배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 달리 의무이행소송제는 국민과 행정청 사이 분쟁을 근본적·일회적으로 해결해 양측 모두의 부담을 줄인다”고 강조했다.

김수민 기자 human8@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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