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법원이 매우 혼란스러운 가운데 3인의 대법관 후보자가 제청돼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법원이 비상시국을 맞고 있는 상황이기에 새로운 대법관들에 대한 기대가 더욱 클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대법관 후보자들의 인선에 대한 우려 또한 만만찮다.
훌륭한 대법관의 자격이라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법률 전문가로서의 능력이고, 둘째는 남을 판단하기에 앞서 자신의 처신을 바로 하는 도덕성이며, 셋째는 법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킴으로써 공정한 재판의 수호자가 될 수 있는 소신과 용기다. 그런데 이 모두를 갖춘 대법관이 그동안 흔치 않았기에 오늘날 법원의 혼란이 초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법률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갖춘 대법관은 많이 있었지만, 도덕성을 겸비한 분은 그보다 적었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의 수호자로 일컬어질 수 있는 대법관들은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를 비롯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법관들, 나아가 법조인들은 정말로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소신이 부족한 것인가?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사람의 문제보다는 제도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 대한민국 법원의 현주소다. 한편으로는 대법원장이 청와대로 대통령을 찾아가 상고법원의 설치를 부탁하기 위해 눈치를 봐야 했다는 점이 문제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대법원장의 행위에 대해 법원 내에서 통제가 가능하지 않았던 점이 문제 되는데, 이 모두가 제도의 문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권을 갖고 있기에 대통령은 사법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대법원장은 대법관 임명 제청권으로 인해 법원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사법개혁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대법관 인사까지도 이른바 코드 인사에 치우치게 되면 사법의 중립성이 훼손되고, 결과적으로 사법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도 위태로워진다. 결국, 사법의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에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다수 대법관을 교체할 수 있는데, 정치권도 아닌 사법부에 코드 인사가 계속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원의 재판이―적어도 정치적 비중을 갖는 선거 소송이나 국가보안법 등의 사건에서―일관성을 잃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면 어떻게 사법(司法)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는가.
신임 대법관 후보자 3인이 법률 전문가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인정되며, 도덕성의 문제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될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한 코드 인사는 지양돼야 한다. 당장 내 편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법관이 되면 대통령이 조금 더 편하게 정치할 수 있고, 대법원장이 법원을 이끌어가기도 수월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를 위해 국가와 국민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결코 만만찮다.
최근 학계 및 시민단체들의 개헌 논의에서 대통령의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권을 삭제하거나 형식화시키는 방안이 깊이 있게 논의된 바 있다. 비록 대통령 개헌안에서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사법개혁을 위해서는 향후 이런 방향으로 개헌이 적극 추진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법개혁의 시작점은 현행 헌법 아래서의 대법관 임명부터 사법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코드 인사를 배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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