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촉진법 지난 1일 만료 외환위기 이후 기업 회생 ‘효자’ 채권자 75% 동의 땐 워크아웃
13대 주력 수출품목 한계기업 매년 늘어 지난해 464개 달해 限時法 아닌 常時法 만들어야
산업통상부가 정한 13대 주력 수출품목 업종별 중 한계기업이 2015년 370개, 2016년 399개, 2017년 464개로 점차 늘어났다. 무역전쟁과 수출 감소, 시중금리의 본격적 인상,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초과근무 제한 등으로 2018년 한계기업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와중에 한시법(限時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 1일로 수명을 다해 폐지됐다.
기촉법은 기업 구조조정 수단인 워크아웃(workout) 제도의 근거 법률로, 1998년 외환위기를 당해 2001년에 제정됐다. 이 법률 덕으로 당시 일시적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급격한 부도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자금을 대출해 준 채권단들까지 동반 부실화로 국가 경제 전체가 큰 충격에 빠지는 상황을 극적으로 모면한 것이다.
이 법률 제정 이전 구조조정 수단은 자율 협약과 법정관리 둘뿐이었다. 자율 협약은 법률에 근거가 없고, 채권단이 100% 찬성해야 작동되는 구조인데, 채권자들이 기업을 살리기보다는 대출금 회수에 집중하므로 성사되기 어렵다. 법정관리는 파산법에 따라 법원이 회생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지만, 법정관리 승인 자체가 어려운 데다 승인이 돼도 신규 자금 지원을 강제할 수 없고, 모든 채권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하므로 신속성이 떨어진다. 승인받지 못하면 곧장 파산으로 간다. 워크아웃은 금융채권자의 75%가 동의만 하면 진행되고, 부채를 탕감하거나 추가 자금 지원도 이뤄질 수 있다. 워크아웃은 자율 협약과 법정관리의 중간 완충장치(buffer) 역할을 했다.
법률 제정 이후 근 18년 동안 4차례 제·개정됐고, 그간 기업 구조조정 분야에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법률이 폐지되는 공백기에는 어김없이 자율적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다수 기업이 회생에 실패했다. 2009∼2016년 중 워크아웃이 성공한 기업은 61개, 현재 진행 중인 기업도 43개다. 같은 기간에 법정관리가 결정된 기업은 28개이고, 실패한 기업은 30개다. 워크아웃 누적 성공률은 54.4%인데, 법정관리의 경우는 45.6%다. 이 법률이 꼭 필요한 이유다.
금융위원장은 이 법률의 재입법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마땅히 힘을 보태야 할 여당의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들이 훼방을 놓는다. 반대 이유는 기촉법이 관치법(官治法)이라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이 법을 활용해 정부 입맛대로 구조조정을 해 왔다고 한다. 채권자인 은행도, 겉으로는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이지만 실은 금융 당국이 은행에 암암리에 압력을 행사한다고 불만이다.
집행 과정에서 정부가 실수하거나 무리했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입김이 특정 기업의 인사나 대출에 개입하는 건 관치라 할 수 있겠지만, 위기 발생 시 국가 경제 전체 차원에서 기간·전략 산업이나 고용 파급 효과가 큰 산업의 구조조정 선제적 대응을 위해 제도적 틀을 만드는 건 다르지 않은가. 이런 일 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이다. 작은 부작용을 염려해 중요한 구조조정 수단을 폐기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동안 기업이 불복할 경우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기업에 워크아웃 개시 신청권을 줬으며, 채권 행사 유예 등 금융 당국의 개입 요소를 폐지했다. 정부의 개입보다는 기업의 사적 자치 보장, 채권자 평등, 채권단의 자율적 의사결정을 강화하는 조치가 꾸준히 법률에 반영됐다. 재입법 반대론자들은 기업이 도산하든 말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이상론을 펼치지만, 워크아웃은 무엇보다 중소기업을 위해 필요한 제도임을 간과하고 있다. 대기업은 계열사 지원이나 자산 유동화로 충격이 덜한데, 중소기업은 시장에 맡겨 두면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당장 8월에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에서 C, D등급을 받은 기업들은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데, 워크아웃 제도가 없으니 법정관리의 공포가 엄습한다. 지난해에도 25개 대기업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돼 이 중 13곳(C등급)이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올해는 해법이 없다. 금융위는 ‘임시 구조조정 협약’을 만들 계획이나 미봉책이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장치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선제적·상시적으로 기업혁신 및 구조 개선을 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꼭 필요하다. 금융위는 정면 도전을 해야 한다. 2∼5년 간격으로 땜질만 말고 상시법(常時法)을 입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