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단처럼 깔린 녹색의 잔디 위, 내 촉각의 모든 것은 한곳으로 집중돼 그 순간을 맞이한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융단처럼 깔린 녹색의 잔디 위, 내 촉각의 모든 것은 한곳으로 집중돼 그 순간을 맞이한다. 2018년 작. 김영화 화백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라면 골프장은 벌써 휴장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한국은 불볕더위도 녹이는 골프 열기가 있다. 3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서 라운드하는 한국 골퍼만의 열정이 있다. 땀 흘리면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의 시원함은 라운드해 본 골퍼라면 다 안다. 이 뙤약볕에 찾아온 골퍼가 고맙고, 감사해서 코스 중간중간에 보리차 얼음물을 비치한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일부 골프장 오너의 생각은 다르다. 그렇게 물을 비치해 두면 누가 물을 사 먹느냐며 직원들을 핀잔한다. A골프장의 한 직원은 골퍼에게 시원한 얼음물을 제공하자면서 얼음 쇄빙기를 사자고 제안했다가 오너에게 혼쭐이 났다. 애사심 없는 언행이라면서, 물 한 병도 사 먹게 해야 하는 것이 직원의 의무라면서.

정말 그럴까. 아니라고 단언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티클 모아 태산인 것은 맞지만, 우리 고유의 ‘덤’ 문화까지 없애 가면서 하는 장사는 미래가 없다. 유독 우리 선조는 물 인심이 좋았다. “물 한잔하고 가라…”는 말에는 참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 모르는 나그네에게 나뭇잎을 띄워 건네던 물은 우리의 끈끈한 정서를 대변한다.

일전에 중국 웨이하이(威海)에 위치한 B 골프장에 지인들과 함께 간 적이 있다. 이곳은 프랑스 유명 브랜드 물만 팔았다. 한여름이라 물을 많이 마시게 됐고 4명이 18홀을 돌며 마신 물을 계산하다가 경악했다. 물값만 10만 원이 넘었고 물 한 병에 무려 8000원이었다. 중국 브랜드 물은 2000원이면 마실 수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는 안 오겠다” “물로 돈 벌려 한다”고 다짐했다.

우리에겐 객기보단 고봉이란 정서가 더 어울린다. 그래서 생긴 단어가 ‘덤’이며 ‘정’이다. 물 한 병을 더 팔려다 점점 발길이 끊길 것이다. 쓸데없이 커피 리필로 인심 쓰지 말고 코스 주변에 시원한 얼음물을 가져다 놓으면 아마 감동받고 더 잦은 발길로 갚을 것이다.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의 두바이 골프장도 코스 곳곳에 시원한 정수기를 놓아 맘껏 물을 마시게 한다. 사막에서의 물 인심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노자는 “물처럼 행동함이 필요하다. 방해물이 없으면 물은 흐른다. 둑이 있으면 물은 머무른다. 둑을 치우면 물은 다시 흐른다. 물은 그릇 생긴 대로 따른다. 이와 같은 성질이 있기에 물은 다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가장 힘이 강한 것이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물 한 병 아껴서 기업을 이뤘다면 이제는 물 한 병 건네는 따듯한 정이 필요하다. 고객을 감동케 하는 게 기업 운영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물이 얼면 부서진다. 고객의 마음이 얼어붙으면 골프장 운영도 산산조각이 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