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목전에 두고 세계 일주를 이제 막 시작한 최진호 씨는 ‘한 달 100만 원으로 생활하는 여행’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쓰는 생활비보다 더 적은 돈으로 즐겁게 여행을 다니며 살 수 있음을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은퇴를 목전에 두고 세계 일주를 이제 막 시작한 최진호 씨는 ‘한 달 100만 원으로 생활하는 여행’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쓰는 생활비보다 더 적은 돈으로 즐겁게 여행을 다니며 살 수 있음을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은퇴 후 세계일주’ 최진호 씨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
‘자산 털어먹는 사업은 말자’
퇴직 이후 생활 두가지 다짐

2년전 아들과 중국 여행서
月 100만원에 충분 자신감

50일간 중앙아시아 첫 코스
이동·숙식…악전고투의 연속

여행자들끼리 빵·술 나누며
‘존중받는다’ 느낌 받아 감동

꼼꼼히 기록해 旅行記 목표
칠십 넘기면 소박하게 농사


‘세계 일주’야 말로 많은 이가 꾸는 꿈이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인 ‘버킷 리스트’의 순위를 비교해봐도 세계 일주는 아마도 최상위권에 있지 않을까. 말로는 다 같은 ‘세계 일주’지만, 실제 여행의 방식은 조금씩 다 다르다. 항공사의 세계 일주 티켓을 사서 경유와 체류를 반복해가며 대륙과 대륙을 건너가는 방식도 있고, 굵은 계획만 세워두고 그저 정처 없이 집을 나서 내키는 대로 여행지를 섭렵하는 방식도 있다. 주말과 휴일을 투자해 구간을 끊어가며 종주하는 ‘백두대간’ 산행처럼 전체 루트를 짠 뒤 여러 번의 긴 여행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도 있다.


# 퇴직 이후 생활을 위한 두 가지 원칙

올 연말 은퇴를 앞두고 공로연수 중인 서울시 공무원 최진호(59) 씨. 그는 대륙별로 구간을 끊어가며 떠나는 ‘은퇴 후 세계 일주’ 여행을 이제 막 시작했다. 그는 세계 일주 첫 여행의 목적지인 중앙아시아를 50일 동안 여행하고 지난 12일 귀국했다. 첫발을 뗀 그의 세계 일주 여행담을 꺼내놓기 전에 그가 은퇴 후 세계 일주 계획을 세우기까지의 얘기를 들어보자.

“은퇴를 앞두고 쇼크가 왔어요. 불면증도 오래 겪었고요. 대학 재학 중이던 1981년 행정고시에 패스한 뒤 지금까지 평생을 해왔던 공무원 생활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욕심만큼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게 억울하기도 했지요.”

그가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쓰는 닉네임이 ‘낙동강 오리알’이다. 정년을 앞둔 자신의 신세가 꼭 그런 것 같아서 닉네임을 택했다고 했다. 허탈감 속에서 그는 정년퇴직 이후 과연 무엇을 하고 지내야 할까를 고민하던 그는 자신만의 노후생활 원칙 두 가지를 정했다고 했다. 하나는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자’는 것. 퇴직 이후 이런저런 민간기업에서 고문 자리 하나 얻어 현업의 후배 공무원에게 청탁이나 일삼는 건 죽기보다 싫다고 했다. 또 하나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건 ‘사업’이었다. 조직생활만 했던 사람이 사업을 시작했다간 알량한 자산을 털어먹는 건 시간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면 남는 건 ‘육체노동’밖에 없는데, 그건 자신이 없었다.

“주변에서 정년퇴직 후 ‘인생 2막’이라며 시작한 일로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와 사업을 했다가 말아먹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정년퇴직 후 아무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이는 딱 한 명입니다. 행정직 공무원을 하다가 퇴직한 뒤에 시험을 쳐서 산림기사가 됐는데, 산에서 일하며 월 300만 원 정도 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좋아하기도 하고, 건강도 뒷받침이 되니 나무랄 데 없지요.”


50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 일주를 떠난 최진호 씨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의 마나스 박물관을 찾아 전설적인 민족 영웅인 마나스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50일 일정으로 중앙아시아 일주를 떠난 최진호 씨가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의 마나스 박물관을 찾아 전설적인 민족 영웅인 마나스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 달 100만 원으로 여행하기

그가 세계 일주를 목표로 삼게 된 계기는 지난 2016년 막내아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직후 떠난 여행이었다. 대입 시험을 치른 뒤 아들이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는 게 못마땅해 ‘여행이나 가자’고 꼬드겨 배편을 이용해 중국 칭다오(靑島)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서울시 프랑스 파리주재관으로 4년 동안 해외근무를 한 경험도 있고 연수다, 여행이다 해서 해외여행도 적잖게 다녀오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여행은 누군가가 모든 것을 대신해준 ‘패키지 투어’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스스로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하고 해외여행을 떠났던 건 2년 전 아들과 동행한 칭다오 여행이 처음이었다.

여행을 앞두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칭다오 시내의 이비스호텔이 1박에 불과 1만5000원이었다고 했다. 버스요금은 1위안(약 170원). 생각보다 여행하는 데 돈이 덜 들더란다. 맥도날드 햄버거 한 끼가 40위안이었지만, 현지인들이 아침에 주로 먹는 만두 5개는 햄버거의 거의 10분의 1 수준인 5위안이었다. 중국을 몇 번 다녀온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물가가 싼 줄은 몰랐다. 그때까지 그가 경험했던 여행은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패키지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이 싸기만 한 건 아니었다. 표준화된 고급 음식 대신 현지 음식을 먹으며 그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그는 ‘이런 식으로 지낸다면 해외에서 체류하는 데 월 100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돈이 덜 든다’는 것. 그게 바로 그가 세계 일주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제2의 도시인 카슈가르의 한 호스텔에서 최진호 씨가 젊은 외국인 여행자들과 중국 국경 통과 무용담을 나누며 찍은 기념사진.
중국의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제2의 도시인 카슈가르의 한 호스텔에서 최진호 씨가 젊은 외국인 여행자들과 중국 국경 통과 무용담을 나누며 찍은 기념사진.

# 세계 일주 여행을 시작하다

세계 일주 여행을 계획하고 그는 두 달 동안 닥치는 대로 자료를 수집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중앙아시아로 정했다.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먼 나라들이었다. 먼저 비행기를 타고 중국 우루무치(烏魯木齊)로 들어가 카자흐스탄 알마티,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카슈가르, 투루판, 둔황, 시안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50일짜리 일정을 짰다.

먼저 아내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목적지와 여행방식을 듣더니 ‘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초라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험지를 누비는 방식의 여행은 아내와 함께 갈 만한 건 아니었다. 아내와는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다. 발칸반도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그러나 크루즈 여행이라면 모를까, ‘한 달 100만 원’을 쓰는 세계 일주 여행은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하지 않을 생각이다. 부부가 노후를 독립적으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내는 여행보다는 운동을 더 좋아한단다. 그는 “노후의 즐거운 일을 찾는다면 둘이 하든 혼자 하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아내와의 동행을 단념하고서 칭다오 여행에 함께했던 막내아들에게 동행을 권했다. 아들이 마침 군에서 막 제대해 복학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빠의 여행계획을 들은 아들은 별 고민 없이 덥석 따라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은 여행 내내 이런 결정을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 악전고투…이런 여행을 왜 할까.

여행은 악전고투였다. 비행기 지연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우루무치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는 것이 시작이었다. 가까스로 다른 비행편을 수배해 오전 1시에 우루무치에 도착했는데, 1인당 1만 원에 예약했던 호스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건물 수리 중이라 마침 그날 간판을 뗐단다. 어찌어찌 물어물어 찾긴 했는데 고시원보다 작은 손바닥만 한 방에 4명이 자야 했다. 벽이란 벽은 온통 낙서투성이였다. 화장실은 물도 잘 안 나왔다. 열악한 숙소사정에 최 씨가 당황했을 정도니 아들은 오죽했을까. 아들이 정색하며 “뭐 이런 방을 잡았냐”고 따졌다. 최 씨가 대답했다. “이런 곳인 줄 난들 알았겠냐.”

최 씨도 몰랐던 게 어디 이런 일뿐이었을까. 숙박비를 지불한 호스텔이 폐업해서 오도 가도 못한 적도 있고, 팽팽한 긴장 속에 이틀을 길 위에서 보내며 눈보라 치는 국경을 넘기도 했다. 우루무치에서 알마티로 갈 때는 말이 침대 버스지, 관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서른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설상가상 버스 운전사는 담배까지 뻑뻑 피워댔다. 아들은 여행 내내 투덜거리면서 아버지에게 “도대체 이런 여행을 왜 하느냐”고 물었다. 글쎄…. 최 씨는 은퇴 후에 왜 이런 여행을 하려는 것일까.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를 끼고 있는 휴양지 촐폰아타의 모습. 이식쿨 호수는 소련 공산당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를 끼고 있는 휴양지 촐폰아타의 모습. 이식쿨 호수는 소련 공산당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 길 위에서는 누구나 존중받는다

이런 고행 같은 여행을 왜 하느냐는 물음을,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묻는 질문으로 대치했다. 그가 대답했다. “길에서 만난 이들은 누구도 나를 ‘꼰대 취급’하지 않아요.” 길 위에서 여행자로 있는 한, 그는 다른 여행자들의 당당한 동료였다. 젊은이도, 나이 든 이들도 모두 동등하게 대우했다. 누구든 거리낌 없이 다가왔고, 편안하고 격의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들뻘, 손주뻘 여행자들이 기꺼이 빵을 나눠주기도 했고, 술을 나눠 마시기도 했다.

이런 교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가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 쉽게 교유할 수 있었던 건 수준급의 어학 실력 덕이었다. 애초에 외무고시를 준비했던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쓰는 데 그다지 불편함이 없다. 스페인어는 프랑스어와 비슷하니 눈치껏 이해할 수 있고, 일본어도 좀 한다. 거기다가 세계 일주를 준비하면서 러시아어와 중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다만 세계 일주를 계획하면서 시작한 중국어는 배운 지 세 달이 다 됐지만, 아직 입도 못 떼는 수준이란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노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른바 ‘혐노(嫌老) 현상’이다. 노인들에게 막 대하는 젊은이들도 문제지만, 그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일부 노인의 문제도 있다는 게 최 씨의 진단이다. 그런데 여행을 나선 길 위에서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단다. 잠자리는 불편하고 이동은 고되지만, 늘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그걸 상쇄하고도 남았다고 했다.


# 여행의 종착지는 소박한 농사

최 씨가 생각하는 세계 일주 여행의 다음 행선지는 동남아 국가들이다. 미얀마와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을 6개월 정도의 일정으로 리턴 비행기 티켓 없이 다녀올 생각이다. 6개월이란 일정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1년이 될 수도 있다. 출발 날짜도 다음 달이 될지, 그다음 달이 될지 모른다. 당장 내일 짐을 꾸려 길을 나설 수도 있다. 그러곤 1년 정도의 일정으로 유라시아 여행을 하고, 요르단에서 한 달 정도 살아볼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그의 세계 일주 여행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다녀온 여행의 정보와 기록을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다. 여행 중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그날그날의 이야기를 적어야 기록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이 기록을 모아서 세계 일주 여행기를 펴낼 생각이다. 그가 이렇게 기록에 몰두하고, 그 기록을 책으로 펴내고 싶어 하는 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자 함이다. 세계 여행을 통해 그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건 ‘은퇴 후 한 달 100만 원으로 하는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치 임무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는 공무처럼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일주 여행을 끝내고 난 뒤에 남는 그의 꿈은 무엇일까. 그 꿈은 더없이 소박하다. “나이 칠십을 넘기면 농사를 지을 생각이에요. 내다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주에게 먹일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내내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했던 얘기를 또 한 번 다짐처럼 덧붙였다. “노년의 삶을,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보내야지요.”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박경일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