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업무 경쟁을 하던 회사원들을 무사태평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 A사의 한 고위임원은 6일 “근로시간 단축으로 솔직히 직원들의 ‘하향 평준화’가 걱정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성과’보다 ‘시간’에 경도된 업무를 지속할 경우 생산성과 경쟁력 하락이 불을 보듯 뻔하다”고 우려했다.
대기업 사무직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근로시간과 관련해 ‘자발성’이라는 단어가 단연 화제다. 해석이 아주 모호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사가 시킨 일만 근로시간으로 인정받고 근무시간 외의 ‘자발적 업무’는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하지만 학계는 상사로부터 지적을 자주 받고 인사고과도 나쁜 직원이 업무 능력 향상을 위해 시간 외 근무를 하는 것은 ‘사실상 상사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근무시간에 포함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 잘하는 직원의 시간 외 근무는 상사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근무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발성이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 탓인지 기업들에선 ‘오늘 할 일은 오늘에’가 아니라, ‘오늘 할 일은 내일로’가 업무의 정석이 되고 있다. A사의 한 부장은 “‘칼퇴근’ 압박을 느끼는 분위기에서 새롭게 주어진 업무를 마무리한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면서 “후배 직원들에게 감히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기업 B사의 부장은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됐던 업무가 ‘시간’ 위주로 바뀌게 되면서 업무를 맡으면 시계부터 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회사원들 간의 승진 경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대기업 C사 팀장은 “경력사원으로 입사해 공채 출신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했고, 주말에도 나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 날이 많았다”면서 “이제는 주어진 업무시간 안에서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이 됐다”고 털어놨다.
‘회식’이 업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으면서 대외 업무를 하는 직원들의 경쟁력 하락도 우려되고 있다. 대기업 D사 차장은 “근로시간 단축제 시행 이후 회사에서 거래처 사람은 점심때만 만나고 저녁에는 가급적 만나지 말라는 말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처와 접촉면을 넓혀 나가는 게 업무의 중요한 부분인데 일을 안 해도 좋다는 얘기로도 들린다”고 말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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