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용본부장 선정을 둘러싼 최근 파문은 여러 측면에서 고약하다. 우선, 청와대 등이 나서 미리 내정해 두고 공모 절차를 진행한 정황이 뚜렷하다. 이른바 ‘무늬만 공모’인 셈이다. 다음으로, 내정자를 다시 내치는 과정을 보면 능력보다 ‘코드’를 중시한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이 국가를 믿고 맡긴 노후 자금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이다. 이미 2200만 명이 가입해 기금이 635조 원 규모에 달한다. 이 자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가 기금운용본부장이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유능한 사람을 기용하고, 일단 기용하면 외풍에 휘둘리지 않고 기금 운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국민연금은 지난 4월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등 3명을 최종 후보로 선정하고도 인선을 미루다 지난달 29일 적임자가 없다며 재공모에 들어갔다. 그러자 곽 전 대표가 “지난 1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으로부터 공모 지원 권유를 받았고, 인사수석실도 지원서 작성에 도움을 주겠다고 연락해왔다”고 공개했다. 청와대는 ‘사후 덕담’으로 둘러댔다가 뒤늦게 ‘사전 권유’를 시인했다. 기금이사추천위원회가 지난 2월 공모를 시작하기도 전에 장 실장이 특정인에게 지원을 권유한 것은 명백한 절차적 하자다. 김성주 국민연금이사장은 4월 곽 전 대표와 만나 6월 해외 출장 문제까지 상의했다고 한다. ‘공모 농단’이나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곽 전 대표를 탈락시킨 이유다. 이민 1.5세대인 곽 전 대표의 국적, 병역이 검증에 걸렸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기금운용본부장은 이민자 아니라 외국인이라도 모셔와야 하는 자리다. 청와대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것이고, 새 본부장이 이에 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주주권 행사 강화’, 즉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가 기금을 기업 개혁의 수단으로 활용하면 기업에도, 연금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투자전문가인 곽 전 사장이 이와 관련해 퇴출됐다면 또 다른 심각한 문제다. 박근혜 정권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개입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구속된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인사 파문에서 신(新)적폐의 분위기가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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