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대한민국 국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또 드러났다. 국정 수행에서 기밀유지 활동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가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게 지급됐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최근 국회로부터 제출받은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지출 결의서 1296건을 분석했다. 국회는 2011년 86억 원, 2012년 76억 원, 2013년 77억 원 등 총 240억 원을 영수증 증빙 없이 특활비로 사용했다. 따라서, 이 돈이 특수 활동에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여당 및 제1야당 원내대표는 매월 1200만·1000만 원씩,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장도 매월 600만 원씩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별도의 정당 국고 보조금을 받았던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과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이 지급 받은 특활비는 41억 원이나 됐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는 그간 세 가지 나쁜 관행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입법부(立法府)가 아니라 종종 무법부(無法府))로 전락했다. 일하지 않으면서 정작 필요한 법은 만들지도 않고 세비는 꼬박꼬박 챙겼다. 지난 4월 임시국회부터 장기 공전하면서 ‘민생법안’을 비롯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법안만 1만 건에 육박한다. 여야가 국회를 공전시키면서도 매월 특활비를 챙긴 것은 그야말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

둘째,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을 지키지 않는다. 현행 국회법(제15조)에 따르면 제20대 하반기 국회의장단은 전임 의장의 임기가 만료되기 5일 전에 실시해야 한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임기가 5월 29일이었으므로 5월 24일에는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했어야 했다. 그런데 국회는 법을 어기면서 아직도 후반기 원 구성을 하지 못했다.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오는 17일 제헌절에 국회의장 없는 국회가 될 공산이 크다. 자신들이 만든 법도 지키지 못하는 국회가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건 난센스다.

셋째,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국민 혈세를 쌈짓돈으로 생각하면서 흥청망청 쓰고 있다. 참여연대는 특활비와 관련해 “국회가 지급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유사한 항목들을 새로 만들고, 월별·회기별로 중복해서 주는 그릇된 관행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중 2∼3개월만 열리는 예결특위와 1년 내내 회의가 없는 윤리특위에 매월 수백만 원 상당의 특활비를 지급한 것은 국민을 섬기지 않는 참 나쁜 국회다.

국회 무용론이 나오는 것은, 이처럼 뒤틀리고 왜곡된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국민의 거센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앞다퉈 특활비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다만, 정의당을 제외한 거대 정당들은 특활비 폐지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특활비가 전혀 필요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며 “세부 항목들을 검토해서 가능한 것은 전부 공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도 “국민 상식과 뜻에 부응하는 제도 개선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내역만 보고도 ‘눈먼 돈’ ‘쌈짓돈’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는 국회 특활비는 제도를 개선하기보다 당장 전면 폐지하는 게 옳다. 더불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부다운 정부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국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타(他)기관별 특활비 운영 실태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감사가 있어야 한다. 도덕이 무너지면 정의가 사라지고 원칙이 바로 서지 못한다. 단언컨대, 국회든 정부든 도덕 없이는 국민의 신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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