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를 보면 지난 한 달 가까이 양측이 진행해 온 물밑 협상 내용에 관해 몇 가지 짐작이 가능하다.
우선,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에 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에 근본적·전략적 의견 일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해 ‘강도적’이라면서 회담 결과에 실망했다는 북한 외무성 발표가 이를 말해 준다. 사실, CVID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든 그 표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용어든 간에 CVID가 뜻하는 바를 북한이 궁극적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다. 10년 전에도 북한은 이 표현에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원하는 완전한 비핵화 개념은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으로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비핵화에 협상의 초점을 맞추려 하나, 북한은 미·북 관계 진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노력, 미군 유해 송환의 4개 합의 내용을 동시적·단계적으로 추진하려는 입장이 완강하다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무한히 늘어지는 중간 과정이 비핵화의 궁극적 목표를 실종시켜 버려 합리적 시일 내 비핵화 달성은 요원해지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반영구적이 된다. 지금의 북한 입장은 어처구니없지만, ‘비핵화에 동의하겠다. 그러나 핵 포기는 못 하겠다’로 요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협상은 금세 결렬되지도 않을 전망이다. 미·북 양측이 정상회담을 성공작이라고 정의 내렸으며, 김정은으로서는 트럼프와의 개인적 신뢰 구축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급속히 높여 왔고, 제재 완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때에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 및 유해 송환 등으로 미국의 이목을 돌리면서 비핵화 문제를 요리조리 피해 나가되 판을 깨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로서도 국내 정치적 어려움에 더해 대외적인 면에서 조만간 개최될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전통적 동맹, 우방 지도자들과의 대립, 중국과의 전면적인 무역전쟁, 러시아의 선거 개입 연루 등 전방위로 싸움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음을 고려하건대 11월 중간선거까지 앞으로 4개월 간 어떡하든 간에 북한과의 협상 모멘텀을 이어 나가야 할 사정이다. 따라서 이번에 합의한 비핵화 검증 논의 작업반도 핵무기 및 시설 신고, 시간표 작성, 비핵화의 명확한 개념 설정 등에 있어 기대하는 성과를 올리기보다는 점차 시간이 지나며 정치적 모멘텀 유지가 주된 기능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니, 북한의 농축우라늄 생산 활동이 계속되고 핵시설이 보강되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걱정하는 사람들로선 당분간 미·북 양측이 묵시적 공생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체하고, 미국은 비핵화에 진전이 있는 체하며 서로 시간 벌기를 하고 있지나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바라진 않지만, 어차피 올 파국이라면 빨리 오는 게 낫다는 비관이 일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협상과는 별도로 향후 다가올지도 모를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책임 있는 정부라면 적어도 제재 압박의 수위 유지와 내년도 연합훈련 재개에 관한 사전 준비를 조용히 협의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난 8일 한·미·일 3국 외무 장관이 제재 수위 유지를 재확인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비핵화를 겨냥해 당긴 활시위가 결과적으로 제재와 동맹이라는 소중한 새 두 마리만 맞춰 떨어뜨린다면 이 얼마나 재앙적인 일석이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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