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함무라비

JTBC ‘미스 함무라비’는 쏟아지는 법조물들 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담은 법조물이다. 일반적으로 법조물에선 검사나 변호사가 활약한다. 그리고 흉악범죄나 권력형 비리처럼 언론에서 크게 다룰 법한 이슈들을 그린다. 반면에 ‘미스 함무라비’에선 판사들이 나온다. 민사합의부여서 거대 이슈가 아닌 일상의 다툼을 그린다. 어느 할아버지가 한적한 길에서 음주 오토바이 운전한 것까지 중요한 사건으로 나오는 식이다.

지금까지 검사, 변호사들이 활약하는 드라마에서 판사는 사법부의 상징인 추상화된 존재로 그려졌다. ‘미스 함무라비’에선 일에 치이고, 법원 내부 인간관계에 치이고, 삶의 무게에 치이는 생활형 판사들이 나온다. 민사합의부에서 부장 판사와 좌배석, 우배석 판사들이 사건을 심리하는 과정도 리얼하게 표현된다. 판사뿐만 아니라 참여관, 실무관, 속기사 등 법원 직원들도 등장한다. 직원들과 판사들의 관계, 판사 사무실 풍경 등이 지금까지의 법조물들 중에서 가장 실제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현직 판사인 문유석 판사가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판사로서 그 자신이 겪었던 고민들, 법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인간형들, 법원조직의 부조리, 생활인으로서 판사의 애환들을 담아냈다. 거대악을 척결하는 판타지 히어로형 법조물 일색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리얼한 생활밀착형 판사 이야기에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법원 풍경의 현실적 묘사에만 그치는 작품은 아니다. 드라마이니만큼 판타지적 요소가 당연히 추가됐다. 바로 여주인공인 박차오름 판사(고아라)다. 다른 판사들이 조직 구성원으로서 보수적으로 행동하고, 사건을 냉정하게 판결하는데 박차오름만은 그러지 않는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게 특기’라며 법원 내 부조리 척결에 앞장서고, 무리해서라도 약자를 위한 재판을 하려 한다. 스폰서를 위해 우회적으로 재판 청탁하는 부장 판사, 자기 출세를 위해 배석 판사를 업무지옥에 빠뜨리는 부장 판사, 나라 경제를 위한다며 재벌에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부장 판사들을 초임 판사에 불과한 박차오름이 면전에서 들이받는다.

현실에서 보기 어려운 초임 판사이면서 국민이 바라는 판사이기도 하다. 박차오름을 통해 이상적인 판사의 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박차오름이 법원의 관행을 깨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이 시청자에게 ‘사이다’로 다가온다. 여성의 역할과 옷차림에 보수적인 부장 판사를 이슬람식 옷차림으로 기함하게 한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통쾌한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현실에서 우리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약한 편이다. 판사의 고압적인 태도와 공감이 안 가는 판결에 비난이 집중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탈하고 이상적인 판사를 내세운 것이 작품의 현실성을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사법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말 힘 있는 사람들은 굳이 로비할 필요조차 없구나. 이미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된 판사가 그들을 재판할 테니까”라며 사법부가 기득권층이 돼가는 현실을 그리고, 올바른 일을 했는데도 튀는 내부고발자라는 이유로 냉대하는 법원 조직문화를 묘사했다. 극적 완성도가 빼어나지 않음에도 시청자가 호응하는 건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법원은 박차오름의 바람대로 약자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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