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 국제정치학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중요 국정 과제들을 다룰 수많은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했다. 그 위원회 밑에 구체적 현안을 담당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두고 있다. 가히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법하다. 정부의 여러 정책에 대해 자문하는 역할을 넘어서 각 정부 부처들을 무시하고 정책의 입안과 결정과 집행을 동시에 하고 월권을 하면서 ‘인민민주주의의 일상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데 커다란 문제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 부처와 위원회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내놓은 종합부동산세, 금융소득종합과세 등 과세 강화 방안들에 대해서 기획재정부는 반발하고 있다. 위원회가 정부 부처와 사전에 조율되지도 않은 설익은 권고안들을 쏟아내면서 정부의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세제안과 같은 경제 정책은 국민의 재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일 뿐만 아니라 시장의 반응 또한 민감하다. 이번 기재부와 재정특위 사이의 갈등은 현 정부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위원회 활동이 안고 있는 ‘인민위원회 방식’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다.

정권을 잡으면 코드 맞는 인사들에게 위원 ‘완장’을 채워줘서 선무당처럼 설치게 하는 행태는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 부처는 내버려두고 아무런 실무적 경험도 없는, 정권 코드에 맞는 민간인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해서도 안 된다.

더욱 가관인 것은 현 정부가 2022학년도 대학입시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대학생 선발과 육성의 주체가 대학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는 듯하다. 교육부가 당연히 책임지고 떠맡아야 할 일을 국가교육회의로 넘겨서 책임을 회피하더니, 이번엔 그 산하의 대입개편특별위원회로 공을 넘겼다. 책임 회피 도미노가 거기서 끝인 줄 알았더니, 마침내는 ‘공론화위원회’로 재재하청을 준다. 그 공론화위원회에서 비전문가들로 구성된 시민참여단 400명이 투표로 4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원자력 공론화위원회에서 인민위원회 방식으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던 현 정부 초기의 잘못된 행태를 되풀이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원자력 전문가들을 빼놓고 원전 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현 정부가 ‘한국판 문화대혁명’을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백년대계인 교육과 대입 개편 문제를 비전문가들에게 맡겨 잘못되면 그 책임은 누가 진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 더는 포퓰리즘식으로 국가 정책을 끌고 가선 안 된다. 장관과 같은 장의 자리에 올라가면 남는 것은 ‘고민과 책임’뿐이라고 한 전직 정부 고위 인사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정부 부처의 장관들은, 자라나는 세대들의 미래가 달려 있고 국가 경제의 미래를 판가름한 중차대한 사안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책임질 각오로 일하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현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나오는 ‘공론화위원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원리와 상충될 위험성이 매우 크다. 이 위원회는 인민위원회를 연상케 한다. 인민위원회는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다. 우리 국민 그 누구도 국민주권의 행사를 통해 공론화위에 대표성을 부여한 적이 없다. 공론화위의 남발은, 공식 정부 부처를 무시하고 대의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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