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기업들 주가 앞다퉈 빠져
객장선 “대세 하락” 비관전망
中정부 인위적 부양도 손놓아
달러대비 위안화 올 5% 급락
커진 부채… 펀더멘털 위기감
생산·투자·소비 일제히 둔화
유동성 ‘풀었다 조였다’ 혼선
‘G2 무역전쟁’ 장기화 가능성
경제위기 땐 統治정당성 타격
10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려 2000억 달러(약 223조 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 경제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슈퍼 파워’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의 대결 속에 중국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미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은 중국에 큰코다칠 것이라는 전망에서부터 중국 경제 자체의 모순이 이번 무역전쟁으로 분출되면서 중국이 침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뒤섞이는 가운데 지금 전 세계의 시선은 베이징(北京)으로 쏠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 1월 29일 올 들어 최고가인 3587.03을 기록한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 최근까지 20% 이상 빠졌다. 주요국 증시 중 최악의 성적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중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문화일보 베이징 특파원의 현장 리포트를 통해 긴급 점검해 본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진입한 가운데 중국 베이징 시내 광화루(光華路)에 있는 한 중대형 증권사. 영업장 직원들은 분주하게 오갔고, 투자 상담을 하러 온 투자자들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거래가 중단된 종목들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숨 가쁘게 바뀌고 있었다.
지난 6일 객장에서 만난 류창룽(劉常榮) 씨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길어지고, 기업들 실적이 좋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주가가 떨어져도 버텼는데, 이번에는 파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증시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직원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최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증시 급락과 위안화 가치 폭락으로 ‘패닉’ 장세를 보인 2015년 여름과 무역전쟁 개시 후 이번 장세를 비교했다. 상하이(上海)의 한 자산관리 회사 대표는 “2015년이 빨리 왔다 빨리 가는 열병이었다면 이번에 우리가 목격할 증시는 오래 계속되는 하락장”이라고 말했다. 2015년에는 개인이 투매에 나선 반면 이번에는 장기 전망에 무게를 두는 기관투자가들이 하락 장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다. 중국 국유기업들부터 줄줄이 주가가 빠졌다. 기관투자가들은 소비와 투자, 수출 등 각종 경제 지표들의 둔화에 주목하고 있다. WSJ는 “투자자들이 이번에는 높은 수준의 부채나 미국과의 무역전쟁 등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여건)을 우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시장의 위기는 실물경제로 스필오버(spill over·전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중국 당국은 고질적인 기업부채 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디레버리징(부채 감축)을 가속화 해왔다. 이에 따라 자금 조달이 힘들어진 기업들은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 위기로 인한 주가 하락→ 담보 가치 하락→금융사 대출 회수 또는 추가 대출 규제→기업 자금 경색 및 실적 악화→실물경제 파급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김재훈 상하이총영사관 재경관은 “당장 중국에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실물경제로의 전이 효과 때문에 금융 섹터 추이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물경제에도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 5월 생산·투자·소매 지표가 일제히 둔화하더니 6월에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전월 51.9에서 51.5로 떨어졌다. 올 상반기 중국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보다 5.4% 증가하는 데 그쳐 지난해 상반기의 19.3%보다 큰 폭으로 둔화했다. 1분기 경상수지는 341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16년 만에 처음이다. 올 1~5월 회사채 부도액은 184억 위안(약 3조900억 원)에 달해 전년 동기(143억 위안)보다 크게 늘었다. 또 고율 관세 부과로 수입 가격이 오르면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이어진다. 중국 증권사 중진(中金)은 최근 증시 분석 리포트에서 “무역전쟁에 따른 기업들의 대미 수출 감소 예상이 최근 증시에 반영됐다”며 “미·중 무역전쟁 상황이 더욱 악화한다면 시장의 반응은 더 격렬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차이퉁(財通)증권도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 총수출은 1.3~2.7%포인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2~0.5%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했다.
금융·실물 모두에 위기 신호가 켜지자 중국 정부는 적극 방어에 나서고 있다.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의 이강(易綱) 행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통화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무역 갈등의 영향을 감내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최근 밝혔다. 이와 관련,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왕레이(王磊) 씨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갖고 있는 정부가 금융시장의 동요를 막을 능력이 있으며, 중국 경제가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무역분쟁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의 신뢰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런민은행은 △기업의 부채 감축을 위한 대출 조이기와 △위기 소기업에 대한 대출 확대를 위한 유동성 풀기라는 혼재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서 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는 “런민은행이 부채 축소냐, 성장 뒷받침이냐에서 방향을 잡지 못해 곤경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중국 금융시장의 또 다른 적신호인 가파른 위안화 평가절하를 놓고도 런민은행은 딜레마에 처해 있다. WSJ는 “중앙은행이 자본 유출을 일으키지 않도록 적정한 수준에서 위안화 가치 방어에 나서고 있으나 무역전쟁에 따른 수출 충격 상쇄를 위해 평가절하를 용인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위안화 가치는 최근 달러당 6.6위안까지 하락해 올 1월 이후 5% 가까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무역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이 중국 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드리우고 있다. 위먀오제(余渺杰)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부원장은 최근 한 포럼에서 “미국이 세계 2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하고 있어 양국 사이의 무역 갈등은 일상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재경관도 “미국이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 2025’를 정조준하고 있고, 중국은 이를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역전쟁은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일자리와 생산, 소비 지표 등이 탄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추세지만 중국은 경제 펀더멘털 자체가 무역전쟁에 불리한 측면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이 GDP에서 차지하는 무역 비중이 17%에 달하지만 미국은 3%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놓고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또 중국 무역흑자의 60%가 대미 수출에서 나오고 있어 수출 감소는 중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를 경우 상처는 미국보다는 중국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향후 차입금리 상승과 주택가격 하락 시 금융 및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역전쟁이 지속되면서 경기가 하강하면 기업 실적 악화, 대출 축소와 자금 회수 압박, 증시 하락 등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중국 정부에 대한 대외 신인도 하락과 외국 투자자들의 대중국 투자 감소도 우려된다.
중국이 무역전쟁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경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의 리더십에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천다오인(陳道銀) 상하이 정법대 교수는 한 언론에 “수십 년 동안 중국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은 경제 성과 때문에 확보됐다”며 “무역전쟁 때문에 경제적 위기가 발생한다면 그 정당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 김충남 특파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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