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해한 사람, 자극적이지 않게 동성애 풀어내
구월의 살인, 조선후기 여종 구월의 살인사건
거울 보는 남자, 죽은 남편의 얼굴 이식한 남자
공백을 채워라, 판타지 가미된 죽은 자의 귀환
개와 하모니카, 공항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
서커스 나이트, 초능력자에게 온 의문의 편지
올여름 휴가엔 어떤 책을 가져갈까. 장르와 국경을 넘어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는 한·일 양국의 신작 소설 3편씩을 모았다. 한국은 최은영·김별아·김경욱의 최신작, 일본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에쿠니 가오리(江國香織),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의 따끈따끈한 소설이다. 어느 것이든 뜨거운 여름을 잠시 잊을 만한 몰입감이 있다.
2년 전 ‘쇼코의 미소’로 주목받았던 최은영 작가는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쇼코의 미소’는 한국의 여고생 소유와 일본 여학생 쇼코가 만나 타인을 이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그려내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 이번에도 최 작가는 진심에 호소하는 정통적인 방식 그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대표적인 게 레즈비언의 연애담을 꺼낸 중·단편 ‘그 여름’. 여전히 편견에 싸인 동성애를 다루지만 내용은 자극적이지 않다. 운명처럼 만난 여고생 이경과 수이는 우정보다 깊은, 때론 순수하지만 때론 비겁한 사랑을 할 뿐이다. 최 작가는 “나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때때로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잔인해질 수 있는 나, 내가 쓴 글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역사 속 여성의 역할에 주목해온 김별아 작가는 장편 ‘구월의 살인’을 펴냈다. 2016년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의 삶을 조명한 ‘탄실’에 이어 2년 만. 이번엔 조선 후기 한양 도성 한복판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추적한다. 이야기의 관심이 인물에서 사건으로 옮아간 듯하지만 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엄격한 계급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살인 동기가 아니라 살인자의 신분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인자로 지목된 그는 지방 토호의 여종 구월이었다. 김 작가는 조선 효종 1년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특유의 상상력을 더해 자칫하면 잊힐 뻔했던 역사를 복원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썼던 김경욱 작가는 ‘거울 보는 남자’를 내놓았다. 둘 다 한 줄의 신문기사가 모티프가 됐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개와 늑대의 시간’이 하룻밤 사이 경찰관 56명을 살해한 끔찍한 사건을 소재로 한다면, ‘거울 보는 남자’는 죽은 남편의 얼굴을 이식한 남자와 여자라는 너무 소설 같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 남편의 사후에 벌어지는, 사랑 이후의 사랑에 대한 소설이지만 꽉 짜인 플롯과 서사가 치밀하다.
일본 작품 중에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신작 ‘공백을 채워라’가 제일 눈에 띈다. 히라노는 요즘 일본에서 아주 ‘핫’한 작가 중 하나다. 국내에서도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그의 소설이 3편이나 번역·출간된 게 이를 입증한다. ‘형태뿐인 사랑’ ‘마티네의 끝에서’ ‘투명한 미궁’이다. 모두 사랑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다양한 형태를 살펴봤던 작품들이다. 이번엔 죽은 자의 귀환이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됐다. 스릴러적 기법이 사용돼 시종일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결국 히라노가 지향하는 바는 같다. ‘부활’은 독자의 호기심을 지속시키는 동력일 뿐 실제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의 삶과 죽음, 행복이다. 히라노는 지난해 방한 당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항상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고민한다. 20∼40대에는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방점이 있었다면 이젠 작가로서 무엇을 해야 하나를 생각한다”며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피부로 느낀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이 합치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화제작 ‘냉정과 열정 사이’의 에쿠니 가오리는 소설집 ‘개와 하모니카’를 가지고 왔다. 총 6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공항 로비에서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선명하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표제작에는 시대도 국적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찰나의 쓸쓸함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제38회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상을 받았다. 200만 부가 팔린 ‘키친’의 요시모토 바나나도 어느덧 중년이 됐다. 그가 이번에 출간한 장편 ‘서커스 나이트’는 한층 성숙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사물을 만지면 그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는 능력을 가진 사이코메트리 사야카의 이야기다. 평온한 일상을 깨는 의문의 편지 때문에 벌어지는, 상처를 치유해가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그린다.
인생에는 누구나 회복을 위해 잠시 쉬어갈 시기가 필요함을 알려 준다. 장르도, 국적도, 시대도 다르지만 결국 양국의 대표 작가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로 귀결되는 듯하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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