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정유정 작가는 컴퓨터로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노트(사진)로 정리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의 노트를 보면 마치 대학생이 시험에 나오는 강의 내용을 꼼꼼히 정리한 듯한 느낌을 준다. 번호를 붙여가며 세밀히 필기해 나중에 몇 번이고 들춰보기 편하게 요약한다. 그의 집에는 그가 즐겨 쓰는 일본제 지브라 1.0 볼펜 심지와 색색의 노트가 몇 상자씩 쌓여 있다. 그가 왜 ‘디테일’에 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트 정리뿐만이 아니다. 정 작가는 그림도 그린다. 소설 속 공간을 스케치하는 것이다. ‘7년의 밤’의 맨 앞 페이지에는 사건의 중심 무대가 되는 세령호와 댐 주변 마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정 작가가 직접 그린 것이다. 이 지도는 복잡한 사건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제보다 더 실감이 난다. 프랑스의 한 평론가는 “‘7년의 밤’의 세령호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라며 극찬했다.
“공간이 이야기를 해야 해요. 세령호가 그랬죠. 세령호는 제가 상상해낸 공간이지만 배경은 있어요. 전남 순천에 있는 주암호가 모델이에요. 하지만 주암호는 자동화돼 있어 댐 관리단 같은 게 없었죠. 그래서 관리단은 진주 남강댐에서 빌려왔어요. 주암호와 남강댐을 버무린 셈이죠. 저는 뭔가 상세히 묘사하려면 현장을 봐야 해요. 예를 들어, ‘종의 기원’의 마지막 부분에서 유진과 해진이 차량 안에서 몸싸움을 하는 장면이 있죠. 그것도 제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차 안에 들어가 직접 액션을 해보고 스케치해서 쓴 거예요.”
이건 ‘28’도 마찬가지였다. ‘28’의 모델 도시는 경기 의정부였는데 아예 의정부 전도를 가져다 놓고 그 안의 건물을 모두 지운 후 필요한 빌딩과 도로를 다시 그려 넣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도시계획을 제가 한 거죠. 이러면 ‘그림에 글을 입혔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남들은 번거롭지 않으냐고 하는데 그래야 틀림이 없고 정확해요. 대신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에 늘 관절염을 갖고 살아요. 모든 취재와 인터뷰, 노트 정리, 스케치가 끝나면 글을 쓸 수 있어요. 준비만 돼 있으면 초고는 약 3개월이면 됩니다. 그냥 하루 종일 기차가 폭주하듯이 쓰는 거죠. 우선 스토리 중심으로 형식 없이, 말이 안 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해요. 그러고는 그걸 몇 번씩 고쳐 쓰는 겁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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