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은평구 갈현로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에서 김숙례(왼쪽) 교사가 권옥련 교사와 함께 18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돌이켜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 교사는 “스승인 권 선생님과 지금 같이 교단에 서 있다는 게 꿈만 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지난 3일 서울 은평구 갈현로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에서 김숙례(왼쪽) 교사가 권옥련 교사와 함께 18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돌이켜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 교사는 “스승인 권 선생님과 지금 같이 교단에 서 있다는 게 꿈만 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선규 기자 ufokim@
김숙례 선일이비즈니스高 교사의 나를 만든 스승

“매일 절망 속에서 고교생활
돈 없어 대학 대신 직장으로

야간대학 다니며 교사자격증
7년만에 스승과 한 학교 근무
부임하던 날 얼싸안고 울었죠
정년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김숙례(37) 교사와 권옥련(59) 교사의 특별한 인연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둘의 만남은 지난 2000년, 한 교실에서 시작됐다. 김 교사는 당시 선일여상(현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으로 책상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권 교사는 김 교사 반의 담임이었다.

18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선일이비즈니스고교의 같은 교무실에 앉아 있는 ‘동료 교사’가 됐다. 지난 3일 서울 은평구 갈현로에 자리한 학교에서 만난 김 교사는 “당시 제 처지에서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국어교사의 꿈을 지금 제 곁에 있는 스승인 권 선생님 덕분에 이룰 수 있었다”며 “지금 같이 일하고 있다는 건 인생의 큰 복”이라고 말했다.

김 교사가 권 교사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이유는 교육관 때문이다. 권 교사는 교직 생활 내내 학생들에게 ‘절대 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고민을 듣고 용기를 주는 칭찬은 물론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나중에 지나고 나서 ‘아! 그때 그 학생에게 이 말이라도 한 번 더 해줄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속에 후회만 남더라고요. 틈만 나면 학생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하려 노력합니다. 제가 본 김숙례 학생은 얼굴에 그늘이 있고 어두운 학생이었어요. 교지를 만들 때 보니 글에 소질이 있었는데 ‘빚더미’를 떠안은 집안 사정으로 꿈은 접어둔 채 바로 취업해야 했던 힘든 상황을 겪었어요. 밝은 모습을 찾아주고 싶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며 ‘세뇌’시켰습니다. 가끔 말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땐 식사를 거르는 학생에게 도시락도 싸주고 구운 옥수수 등의 ‘뇌물’도 주며 말이죠.”(웃음)

권 교사의 전략은 김 교사에게 주효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 진학은 생각지도 못하고, 졸업 후 바로 비서로 일해야 했지만, 김 교사는 긍정적으로 스승의 말을 믿고 늘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20세, 어린 나이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야간대학에서 주경야독의 생활을 이어갔다.

“밝은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어요. 이전까진 제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매일 절망 속에 살며 제 처지가 바뀔 것이라곤 생각도 못 해봤고요. 고교 졸업 후 등록금을 마련하기 힘들어 대학진학도 여의치 않았기에 일단은 일을 시작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야간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선생님이 ‘할 수 있다’고 강조한 덕분에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죠.”

결국, 김 교사는 일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나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모교에서 계약직 교사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권 교사 외에는 누구도 생각지 못하던 일이었다.

“제자가 일을 병행하며 장학금을 받고 학업까지 마쳤으니 스승으로서 얼마나 기뻤겠어요. 처음 제자가 모교 교사가 돼 돌아오는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한참 울었어요.”

이후 모교 졸업생의 본보기가 된 김 교사는 11년째 스승과 한 학교에서 동료 교사로 일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3학년 부장교사를 맡아 부원인 스승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김 교사는 “혹시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게는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조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시는 든든한 우군”이라고 말했다. 권 교사도 “제자와 함께 일하면서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졌고, 정년까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고 했다.

두 교사는 최근 교권 침해 사건 등이 발생하며 스승·제자 관계가 과거와는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권 교사는 “교실에서 좋지 않은 사건이 자주 발생해 지쳐버린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그야말로 놓아버리는 일도 있지만 ‘교사의 한마디에 학생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긍정적이고 희망적 교육관을 유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심하게 반항하는 아이들도 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기 때문에 감싸줘야 한다”며 “너무 쉽게 학업을 그만두거나 자퇴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시간을 주고 학교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두 교사는 인터뷰 내내 가공되지 않은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동료로서 일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주고받다가도 옛날얘기가 나올 때면 ‘어머니와 딸’ 혹은 ‘스승과 제자’로 돌아간 듯했다. 김 교사는 스승과 함께 일하는 데 따르는 ‘단점’도 있다고 귀띔했다.

“스승이 가르친 결과가 곧 저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잘못하면 선생님에게도 피해가 갈 테니까요. 늘 일을 나서서 하느라 몸이 고달플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리 노력해봤자 내 인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제게 주신 가르침을 잊지 않고 저도 아이들에게 힘이 닿는 한 그 가르침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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