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살펴보면 경제가 발전하고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민주화가 이루어진 듯하다. 특히 민주화를 이끈 유럽의 역사를 보면 그래 보인다. 유럽은 철저한 신분사회이자 귀족사회였다. 그러다가 신흥세력인 상인세력이 성장하면서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하층남성, 유색인종, 여자로 점차 확대되었다. 이게 민주화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매우 일부의 사례일 수도 있다.
지난달 12일 미·북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화면 속에 비친 싱가포르의 모습은 높은 빌딩과 잘 갖춰진 인프라로 현대화된 아름다운 나라였다. 싱가포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 달러를 넘는 세계 10위권의 부유국이다. 반면 싱가포르의 언론자유지수는 150위권으로 최하위권이다. 실질적 세습체제인 1인 독재에 가까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나라일 뿐이다.
터키의 예도 있다. 터키는 다민족, 다종교 사회가 조화롭게 공존하던 나라였다. 그런데 최근 집권한 정권이 종교를 앞세운 강권적인 지배체제를 부활시켜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염려를 사고 있다. 21세기 들어 1인당 GDP는 급격히 상승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셈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민주화는 필연이란 사고는 사회진화론적 관점이다. 그런데 이는 진화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듯하다. 다윈의 진화론은 진화와 퇴화를 동시에 동등한 위치에서 다루고 있다. 다윈이 살던 시절이 중세 암흑기였기에 ‘진화론’이라고 명명하였으나, 진화론은 자연환경에 적응해 변화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동굴로 들어간 동물은 시력이 퇴화되고, 사막으로 간 동물은 시력이 진화한다.
진화론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가 지구 생물의 진화 과정을 ‘우연’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생물의 지적화나 복잡화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란 말이다.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인간이 탄생한 것도 단순히 우연이라는 결론이다. 사회의 변화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역사는 발전하지 않는다. 단지 발전할 가능성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진화론에 심취해 사회는 필연적으로 공산주의로 발전한다고 믿었다. 그 오류를 지금도 범하고 있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에게 금지돼 있던 운전을 허용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이처럼 세계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국가가 존재한다. 중국도 중국 나름의 독특한 문화와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중국의 민주화를 거론하는 것은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한국의 민주화 과정이 특이한 것일 수도 있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민주화를 기적이라고도 하고, 아시아 최초의 민주국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선택했다. 그게 옳고 효율적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중국 스스로의 선택을 차분히 바라볼 뿐이다.
한양대 인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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