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이는 재계

국민연금이 예정대로 이달 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 범위를 배당 확대 등 재무적 측면에서 급여, 고용,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측면으로 확대하면서 자칫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주권 행사 결정 기구가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기업 개혁’을 전면에 내건 정부의 경영권 압박만 정당화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외국 헤지펀드의 국내 기업 공격도 더 거세질 것이란 분석이다.

18일 재계 등에선 전날 공개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초안에 대해 “사실상 경영에 참여하는 수준”이라며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국민연금이 기업경영 간섭 등에 대한 우려를 의식해 주주권 행사를 자본시장법상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은 범위(비공개 대화, 공개서한 발송, 중점관리 사안과 기업 선정 및 공개, 주주대표소송 등)로 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기업 경영 개입은 이미 시작됐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다. 국민연금은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신설해 의결권 행사 결정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지만 위원 임명자가 보건복지부 장관이라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결권 행사 관련 최종 결정도 수탁자책임위원회를 거쳐 6명의 정부 측 당연직 인사가 포진한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결정되는 만큼 결국 정부가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 등 주요 기업의 주총 안건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까지 도입되면 사실상 기업 의사결정권이 국민연금으로 넘어가게 된다”면서 “정부가 입맛대로 기업을 움직이려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인사 개입 문제와 국민연금 운용의 독립성 보장 문제를 도입 전에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은 다른 연기금과 공제회에 가이드 라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에 이어 공무원연금도 내년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겠다고 지난 16일 밝힌 바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로 엘리엇매니지먼트 등 외국 헤지펀드의 공격적인 ‘주주 행동주의’가 강화되면서 기업활동이 위축되거나 기업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헤지펀드는 주로 자사주매입이나 배당확대 등 단기 이익 실현에만 관심이 있다”면서 “정부가 헤지펀드에도 주주권 확대를 권유하면서 국내 기업이 곤경에 빠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황혜진·최재규 기자 best@munhwa.com
황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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