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兆 ‘증시 큰손’ 국민연금, 이달 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276社 지분율 5% 이상 보유
국내 주식시장 지배력 압도적
株總 안건 贊反 표명만으로도
투자기업은 압박 느끼기 충분

국민연금 결정기구 기금운용위
정부 주도 운영에 독립성 상실
노후 자금 수익률 올리기 아닌
정치적 목적 활용 가능성 높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이 임박해지면서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주인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투자 기업을 상대로 주주권을 충실히 행사토록 하는 지침이다. 연금기금을 정부 산하기관이 운용하는 만큼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정부나 정치권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에 관여하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정부가 이러한 논란을 의식해 경영 참여와 관련된 조항은 일부분 제외하거나 장기과제로 돌렸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자체가 각종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연금학회장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내고 현재 한국사회보장학회장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부 교수는 18일 “국민연금이 정부 입김에서 100%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이 정부에 예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국민연금 기금을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고유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큰손 국민연금 시장 내 영향력 절대적 = 국민연금의 주주행사 자체가 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투자 규모는 막대하다. 국민연금 기금은 1분기 기준 634조6000억 원에 달하고, 이 중 20.9%인 131조1000억 원을 국내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액 중 54.1%는 직접운용 나머지는 자산운용사에 위탁한다. 투자 자금 자체가 131조 원에 이르는 만큼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은 압도적이다. 상장회사 중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5% 이상인 기업은 2016년 말 기준 276개 기업에 달한다. 삼성전자에는 23조 원 이상을 투입해 지분율이 9.2%에 달하고, 네이버에도 2조6000억 원을 투자해 10.6%의 지분율을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국민연금이 국내 굴지의 기업의 최대주주로 나서는 일은 문제도 아니다. 이미 다수의 기업에서 최대주주이거나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금융시장뿐 아니라 대기업의 경영권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갖게 된다. 단순투자와 달리 주주권 행사는 경영진 해임안 상정,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비롯해 기업 경영권의 방향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영참여 조항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국민연금이 주주총회 안건에 찬반 의사를 표명하고 투자 기업에 대한 비공개 대화에 나서는 일로도 충분한 압박”이라고 말했다.

◇독립적 운용 글쎄…사실상 정부 주도로 운영 = 국민연금 기금의 최고 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 관련 4개 부처 차관, 공단 이사장, 사용자(3명), 근로자(3명), 지역가입자 대표(6명)와 전문가(2명)로 구성됐다. 김 교수는 “외형상으로는 가입자 대표가 위원회에서 다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 주도로 운영되는 게 현실”이라며 “국민연금 기금은 정치적 중립이 굉장히 중요한데,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불가피하게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에 지시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또, 최근 기금운용본부장의 공모과정에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개입한 사건도 이러한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여부를 사전에 공시하고 민간 위탁 운용사에 의결권을 넘기겠다는 입장이지만, 위탁받은 운용사가 출자자 입김과 무관한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해외국가의 경우에는 연기금의 자국 기업 투자의 지분 비중이 1% 정도밖에 되지 않아 공룡으로 성장한 국민연금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수익률과 기업 경쟁력 저하도 우려 =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포럼에서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시장 지분을 7% 가까이, 주요 대기업의 지분을 10% 가까이 보유하고 있다”며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기업지분을 활용해 국민연금이 기업의 경영에 개입하는 일은 연금운용의 기본 철학과 크게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 노후자금인 연금의 수익률 측면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신 교수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의 근간인 ‘기관투자자 행동주의’가 미국 등에서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기업경쟁력이 높아지거나 장기적으로 투자자 수익을 높였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기관투자자 간 담합 등이 나타나고 기업의 성장 잠재력 약화, 고용 불안과 분배 악화라는 부정적 결과만 두드러졌다. 김 교수는 “주주권이 과도하게 행사되면 기업 경영 활동은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기금운용본부장의 장기 부재 등과 맞물려 3월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는 코스피지수 대비 -1.36%를 기록했다. 조 교수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노후 자금이고, 운영도 국가가 독점으로 하는 만큼 중립을 유지하면서 기금고갈을 늦추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수익률보다 ‘재벌 개혁’을 내세우는 정부정책 코드 맞추기에 주력하면 수익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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