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17일 당정협의에서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각종 명목의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기초연금 조기 인상, 노인 일자리 확대 지원, 사회 초년생 구직 활동 지원, 국민기초생활보장 확대, 아동양육비 지원 대상 확대 및 지원액 인상,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 확대, 영세자영업자 지원 방안 모색 등이 골자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임금과 각종 지원금 등으로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높이면, 이들의 소비가 늘고, 이를 뒷받침할 투자가 늘어 생산이 늘고, 그 결과 소득이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펌프에 마중물을 부어 지하수를 퍼올리듯이.
개인의 소득은 그의 생산요소를 누군가가 사 줄 때 발생하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자본가·기업가다. 이들은 사람들이 가진 노동과 토지 서비스 등의 생산요소를 구입해 시간이 걸리는 생산에 투입, 미래에 완성되는 재화를 팔아 이자와 이윤을 소득으로 얻는다. 그 과정에서 자본가·기업가는 자신의 저축으로써 근로자와 토지 소유자에게 임금과 지대 형태의 소득을 제공한다. 이로써 일자리와 소득은 자본가·기업가가 조직하는 생산 활동에 의해 창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득은 지하에 항상 고여 있는 게 아니다.
구직 지원금을 받으면 소득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는 생산 활동을 통해 번 게 아니라, 정부의 이전 지출 형태이므로 국민총생산에도 집계되지 않는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핵심은 이렇게 증가한 소득이 소비를 통해 투자와 생산을 촉진해 다시 소득을 증가시킨다는 것인데, 앞서 열거한 지원 항목은 모두 복지 지출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소비다. 또, 소득주도 성장이란 이름 아래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더 걷으면 민간 저축이 감소해 투자가 줄어든다. 투자는 저축을 바탕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경제의 생산 능력은 줄어든 투자만큼 덜 커진다. 따라서 소득주도 성장은 성장을 촉진하기보다는 걸림돌이 된다. 성장이 멈추니 추가적인 복지 재원도 마련하기 어렵다.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제가 비숙련 근로자의 고용을 해친다는 것은 경제 원론 중의 원론에 속한다. 더구나 비숙련 근로자를 고용하는 영세업체들의 수익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리면 그 결과는 파국이다. 임금이 근로자에 대한 기업 간 경쟁으로 상승하면 비숙련 근로자들에게 이익이지만, 인위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마저 아예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과학적 지식마저 부정하는 정책이 어찌 성공할 수 있겠는가.
정책 입안자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의도한 선(善)과 의도하지 않은 악(惡)’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는 비숙련 근로자의 소득을 보전해 주려는 좋은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이들을 실업자로 내모는 의도하지 않은 악을 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타 항목의 복지 지출도 생활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에 불과할 뿐, 성장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 정권이 정녕 복지 국가를 지향하고 싶다면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위장하지 말고 차라리 정교하게 설계한 복지정책을 제시하는 게 낫다. 그리고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소득과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의 생산 활동을 장려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경제가 덜 나빠지고 그나마 정권의 지적 품위도 조금은 유지할 수 있다. 야구 경기에서 질 수는 있지만, 본헤드(bonehead) 플레이는 곤란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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