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장비 제조회사인 인성정보의 직원들이 연구·개발 중인 원격의료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제도 미비로 국내 판로가 사실상 막히자 미국 등 해외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원격의료 장비 제조회사인 인성정보의 직원들이 연구·개발 중인 원격의료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제도 미비로 국내 판로가 사실상 막히자 미국 등 해외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 복지부, 보건의료 규제혁신 1순위로 추진

‘의료 + IT’ 융합 시너지 효과
환자 병원 체류기간 12 → 7일
오지주민·직장인에 ‘안성맞춤’
상용화땐 일자리 37만개 창출

의료계선 “대형병원 쏠림” 반발
시민단체, 영리화 내세워 반대
박능후 장관 “도입 필요성 논의”


#섬에 거주하는 당뇨환자 A 씨. 매번 혈당검사와 당뇨약을 처방받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나와 인근 대형병원을 찾아야 해 꼬박 하루 이상을 잡는다. 그나마도 한 달에 한 번꼴. 가끔 농사일정 때문에 진료를 받지 못했을 때는 상태가 악화되기도 한다. A 씨는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굳이 뭍으로 나가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오히려 실시간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소식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밤샘근무와 회식자리가 많은 중년의 직장인 B 씨. 고혈압에 비만인 그는 평소 병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굴뚝 같지만, 평일 낮 시간에 병원을 찾을 시간을 내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가끔은 이러다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장으로서 달려오던 길을 멈출 수 없다. 그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웨어러블 헬스케어 장치를 통해 의사에게 혈압과 비만도를 실시간으로 관리받는 날을 꿈꾸고 있다.

이는 기술 발달이 더 필요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도 가능한 시나리오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의료가 불법인 현행 의료법이 규제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의 우수한 의료 수준과 정보기술(IT)이 융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음에도 이러한 규제 때문에 환자의 편의성은 물론 관련 산업의 발전도 글로벌 수준에서 뒤떨어져 가는 상황이다. 정부가 미래 블루오션 영역인 보건의료 분야 규제혁신을 추진하면서 상용화 1순위로 꼽히는 ‘원격의료’가 주목받고 있지만, 실제 재추진까지는 산 넘어 산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대한의사협회와 의료 영리화 프레임으로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반대가 거센 탓이다. 과거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던 법안은 이 같은 반대로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진보 성향의 정당이 ‘의료 영리화의 사전작업’이라는 이유를 들어 강력히 반대했다.

이제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는 4차 산업혁명에서의 퇴보를 우려하는 한편, 첨단 의료서비스의 시급성을 들어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며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24일 “지금 의료 서비스가 첨단에 와있는데 이를 도외시하다가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의료계와 충분히 상의하면서 기술 진보의 접점을 받아들여 현실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규제혁신을 기치로 내건 뒤 추진하는 1호 사업도 의료규제혁신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하루가 다르게 원격의료 관련 기술이 진전되고, 의료환경도 변화하고 있어 의료계가 어려워하고 있는 점을 알고 있다”며 “의료계와 먼저 본질적인 필요성과 우리가 직면한 문제점을 같이 놓고 허심탄회하게 토의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직역 단체에 밀린 환자 편의성 =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의료 시행 시 대형병원으로 환자들이 쏠린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면진료에 비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내세우고 있지만, 원격의료가 시행되면 동네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줄어든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실제 정부가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원격의료의 단계적 추진 의사를 밝히자마자 의사협회는 주무부처인 복지부에 질의서를 발송했다. 의사협회의 반대에도 원격의료를 추진할 것인지 답해 달라는 내용이다.

원격의료는 병원에 가지 않고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 당뇨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에게는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미국 애보트는 인체에 삽입하는 심박측정기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결해 심장 상태를 손쉽게 모니터링하는 장비를 개발했다. 평소 심박 수를 체크하다가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경우 담당 의사에게 정보를 보내준다.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특히 병원에 가기 어려운 도서벽지 만성질환자의 경우 짧은 시간의 진료 또는 단순한 약 처방을 위해 몇 배는 많은 이동시간을 소비해야 하는데 이러한 문제점도 한 번에 개선할 수 있다. 병원에 가기 위해 휴가를 따로 내야 하는 도시근로자에게도 유용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국내 시범사업이나 해외연구를 통해 원격의료의 실효성은 꾸준히 입증돼 왔다. 만성질환자의 건강수치 향상뿐 아니라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재진환자들을 대상으로 원격모니터링을 시행해 △의료비 절감 △병원 이용에 따른 교통비 절감 △진료 대기시간 절감 등으로 얻는 사회적 편익이 연간 2589억 원가량 발생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원격의료를 이용하면 통상 치료 비용의 20%를 절감할 수 있다. 원격의료를 이용한 환자의 병원 체류 기간도 12일에서 7일로 줄었다. 의사들 역시 원격의료로 각종 데이터 관리에 소모되는 시간이 25% 단축되고, 환자 치료 시간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의료 영리화 족쇄에 가려진 블루오션 = 원격의료는 산업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직역 단체의 반대는 물론 의료 영리화 논란으로 추진이 더욱 더디다. 무상의료운동본부·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원격의료를 포함한 보건의료의 산업화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보건의료는 공공적 성격이 강한 만큼,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여기에 진보 성향의 정당 등도 의료 영리화 프레임에 가세했다.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18대와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데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관련 산업이 활발하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말레이시아 등 세계 여러 국가에서 원격의료를 시행해 발전시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랜스페어런시 마켓 리서치(Transparency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2014년 143억 달러였던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이후 연평균 14.3% 성장해 2020년에는 36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RNCOS는 2014년 원격의료 시장 규모를 178억 달러로 추정한 뒤 2020년까지 연평균 18.4% 증가한다고 전망했다.

국내의 현대경제연구원도 원격의료 이용률이 전체 인구의 20%로 확대될 경우 2조 원 이상의 신규 시장이 창출한다고 봤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원격의료로 데이터를 다루는 간호직, 통신을 담당하는 전산직, 원격 진찰에 필요한 의술 및 장비를 연구하는 연구직, 전반적 업무를 보조하는 행정직까지 다양한 ‘신(新)직업’이 탄생한다고 봤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원격의료가 일반으로 전면 허용될 경우 약 37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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