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칵테일

영롱한 색채의 칵테일은 다양하고 오묘한 맛을 낸다. 단맛으로 시작해 쓴맛으로 마무리하기도 하고, 상큼한 전조를 보이다가 구수하고 묵직한 한 모금을 남겨 놓기도 한다. 칵테일의 맛은 세상만사와도 닮아 있다. 로저 도널드슨 감독의 1988년 작 ‘칵테일’(사진)은 백만장자를 꿈꾸는 청년을 통해 인생의 달고 쓴 여정을 보여준다.

막 군복무를 마친 브라이언(톰 크루즈)은 백만장자의 꿈을 꾼다. 돈이 쌓여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믿는 그는 뉴욕 월스트리트로 향한다. 멋진 슈트까지 차려입고 면접을 보지만 대학 학위가 없는 그를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망연자실한 브라이언이 거리를 헤매다 찾은 곳은 술집이다. 마침 바텐더보조를 구한다는 그곳에서 그는 바텐딩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며 술집 매니저 더그(브라이언 브라운)와 우정을 쌓는다. 브라이언에게 더그는 맨몸으로 도시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한 지혜로운 ‘스승’이다. 하지만 돈 많은 여자를 찾아 출세하겠다는 목표를 지닌 몽상가 더그에게 실망한 브라이언은 자메이카로 떠나 자신의 바를 차린다. 그곳에서 그는 휴가 중인 조던(엘리자베스 슈)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산호색 바다의 풍광이 펼쳐지고, 방금 딴 코코넛으로 만든 칵테일이 넘쳐나는 자메이카는 사실 사랑하고 즐기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곳이다.

26세였던 톰 크루즈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이 영화에서 가장 화제가 된 장면은 크루즈와 엘리자베스 슈가 사랑을 나누는 폭포 신이다. 뉴욕의 작은 델리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조던은 세심한 성격의 20대 초반 여성이다. 조던은 여행지에서 만난 브라이언과의 관계가 불안하면서도 바다보다 더 푸른 눈을 가지고 있는 이 남자에게 무방비 상태로 빠져든다. 섬 전역을 탐험하던 이들은 숨겨진 폭포를 발견한다. 이 작은 폭포에서 조던은 브라이언의 눈을 바라보며 입고 있던 수영복을 벗는다. 조던의 도발이 즐겁기만 한 브라이언 역시 걸친 옷을 물 밖으로 벗어던진다. 나체가 된 두 사람이 석양이 내려올 때까지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섬이라는 지리적 폐쇄성은 에로티시즘을 자아낸다. 세상과 떨어진 그곳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애정행각은 속세에서 벌어지는 그것과는 다른, 폭발적인 성적 에너지를 뿜어낸다. ‘블루 라군’(감독 랜들 클레이저·1980)의 유사 근친 관계와 ‘이어도’(감독 김기영·1977)의 발정 난 여자들은 섬이 주는 기괴하고도 에로틱한 기운을 잘 표현하고 있다.

폭발적인 기운은 쉽게 가라앉는다. 두 사람은 몇 번의 절정을 함께 했지만 브라이언은 오랜만에 찾아온 더그와의 내기에 이기기 위해 조던을 배신한다. “넌 부유한 여자를 절대 유혹할 수 없어”라는 더그의 말에 발끈한 브라이언은 무모한 베팅에 사랑을 희생시킨다. 결국 그는 바에 찾아온 중년 여성 사업가와 하룻밤을 보낸다. 이를 알게 된 조던은 뉴욕으로 돌아가고, 브라이언은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사업가와 뉴욕에서 동거를 시작하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브라이언은 참회한다. 허영과 탐욕으로 마지막일 수도 있는 사랑을 무모하게 희생시킨 것을 후회하고 조던을 찾아 나선다. 브라이언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조던은 재벌인 아버지의 반대를 뒤로하고 용서를 구하는 브라이언과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난다.

이 영화의 설정은 구태의연하다. 1980년대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가 대부분 그렇다. 돈만 좇던 남자가 교훈을 얻어 가난하지만 착한 여자와 결혼하나, 알고 보니 재벌의 딸이었다는 결말은 헛웃음이 나오게도 한다. 하지만 기대감을 조금 낮추면 이 영화는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많다. 레이건 시대는 ‘거리에 돈이 넘쳐난다’는 말이 돌 정도로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였고, 누구나 부자가 되기 위해 영혼을 팔았던 씁쓸한 시대이기도 했다. 가장 유쾌한 졸작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칵테일’이 빛나는 건 그런 이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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