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빈소에서 김병준(왼쪽)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조문하고 있다.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빈소에서 김병준(왼쪽)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조문하고 있다.
원외 인사 ‘후원금 모금’ 不可
정치자금 관련규정 개선 필요
정치권 중심 조심스럽게 제기

“美처럼 기부내역 상세 공개
한도 높이고 신고·처벌 강화”
‘만성적 자금난 해소’ 요구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도 결국 정치자금의 굴레를 피해가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을 두고 현실에 맞게 관련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노 원내대표가 현역 의원이 아닌 시절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해 현역 의원과 정치신인·원외 인사 간의 차별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치자금의 한도를 높이는 대신 신고와 집행 과정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24일 “노 원내대표와 정의당이 그간 정치자금법을 더 강하게 고치고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편에 섰던 것을 감안해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면서도 “돈의 유입 경로부터 운영, 처리까지 지나치게 돈의 흐름을 막아놓은 현재의 정치자금법은 고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자금법에서 후원회 행사 등을 통한 정치자금 모금은 엄격히 금지돼 있다.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 3억 원, 선거가 없는 해 1억5000만 원이 한도인 공식후원금과 국회의원 세비가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치자금의 전부다. 이 자금으로는 지역 사무실 기본 운영비도 빠듯하다는 게 여야 의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현역 의원이 아닌 경우는 아예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어 만성적인 정치자금 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노 원내대표 역시 강연료 등 명목으로 고등학교 동창이던 드루킹 측 도모 변호사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시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인 2016년 3월이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무엇보다 현역 의원과 원외 인사, 정치 신인 간 일상화돼 있는 불공정 게임, 차별을 시정하는 게 ‘공정’의 시작”이라며 “현역이든 비현역이든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되, 50달러 이상 낸 사람은 아주 상세하게 기부자 명세를 공개하도록 돼 있는 미국의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낯선 지역에 출마하는 과정에서 돈이 필요했던 노 원내대표 입장에서 여러 차례 강연을 통해 안면을 튼 사이에, ‘선의’라며 고교 동창이 건넨 돈을 마다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돈줄에 ‘숨통’은 트여 있는 현역 의원들도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차제에 정치자금 한도를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선거법·정치자금법 관련 변호를 전문으로 해온 황정근 변호사는 “14년 전인 2004년에 연간 1억5000만 원으로 정한 정치자금 한도를 국민이 너그럽게 풀어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황 변호사는 모금 한도는 늘려주는 대신 정치자금의 운용에 대한 감시 및 처벌은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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