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학동 중고거리 르포

“최근15년중 요즘 경기 최악
개업문의는 절반으로 급감”

“작년까지는 버티던 업체들
올들어 인건비 올라 무너져”

주방기기 쏟아져 들어오는데
물건 사러 오는 사람은 없어

중고값 전년보다 30% 하락
사업청산 인력업체만 호황


“지난 15년 중 요즘 경기가 최악입니다. 폐업 처분 요청은 2배 늘었는데, 개업 문의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일명 중고 거리로 불리는 서울 중구 황학동 일대에서 15년째 중고 주방기기 매입·판매업을 하는 권혁범(48) 주방나라 대표가 최근 경기 상황에 대해 한 말이다. 24일 오후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황학동 거리에는 트럭들이 업소용 냉장고, 대형 식기세척기, 커피머신, 각종 가구와 그릇 등 폐업 처분을 한 물건들을 연신 실어날랐지만, 물건을 보러 온 이들은 찾기 어려웠다. 내수 침체에 최저임금 등 인건비 인상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면서 폐업 물건들은 인도, 도로까지 침범해 쌓여 있었다. 사용 기간이 1년이 채 안 된 새것과 같은 제품도 많았다.

권 대표는 황학동 인근에 물품 보관 창고를 4개 운영하고 있는데 모두 꽉 찬 상태다. 그는 “우리뿐 아니라 황학동 일대 전체가 포화 상태”라면서 “지난해까지는 어려워도 버텼던 업체들이 올해 들어 인건비까지 오르면서 너도나도 폐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규 개업도 줄어 중고 물품 매입을 아예 거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업체처럼 황학동 인근에 창고를 둔 곳 외에도 경기도 등 외곽 지역에 대형 창고를 운영하는 청산 산업 업체들도 더 이상 새 물건을 받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한 중고 가구 전문점 대표는 “그래도 올해 초까지는 이 정도로 나쁘지 않았는데, 지난 5월부터는 개업 준비로 물건을 보러 오는 이들이 전멸했다”면서 “예전에는 경기가 어려워 폐업이 많으면 그만큼 소자본 창업도 많아 중고 물품을 찾는 이들이 꽤 많았지만, 지금은 문의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는 “창고에 꽉 찬 물건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중고 물건값은 전년보다 30% 이상 하락했다. 상태가 아주 좋은 1000만 원 상당의 커피머신의 경우 과거에는 매입가가 최고 250만 원까지 갔지만, 현재 100만 원도 받기 어렵다. 멀쩡한 물건들이 그대로 고물상으로 직행하는 사례도 많다. 폐업하는 이들은 물건값이 떨어진 탓에 오히려 처분 비용만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다.

사업 청산 관련 인력 업체(일명 ‘하이에나 산업’)만 호황이다. 식당, 카페 등이 폐업하는 경우 각종 기기를 뜯어내 철거하고, 업소용 냉장고처럼 혼자서 나르기 어려운 대형 물건들을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2~3명 이상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서울 마포구의 한 업체는 “다 뜯어서 트럭에 싣고 그대로 산업폐기물로 처리하기도 하는데, 1t 트럭 1대당 15만 원의 처리비, 인상된 전문 인력 인건비, 유류비 등을 포함하면 폐업하는 업체가 고철값도 못 건지는 것은 물론, 오히려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자영업을 하다 폐업한 이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위험도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자영업자의 빈곤율은 15.6%로 상용근로자(4.8%)의 3배 이상으로 높았다. 자영업 폐업 이후로는 대출금 상환 등으로 빈곤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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