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戰이 관건인 ‘이관 작업’
최대인력 투입해도 지지부진
“법 지키려면 실적 포기해야”
주문 폭주 에어컨공장도 비상
생산라인 인력수급에 애먹어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7월 1일)된 지 한 달을 앞두고 있지만 산업 현장 곳곳에서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구인난에 시달리는 반도체업계는 중국 등의 추격을 막는 기술 속도 전쟁의 최전선인 핵심인 연구·개발(R&D) 부문에 근로시간 제약마저 가해지면서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가장 많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문은 이관 작업이다. 이는 몇 년 동안 개발한 반도체 신제품을 연구 라인에서 제조 라인으로 옮기는 작업을 말한다. 이 시기에는 순수 연구 조직과 공정 개발팀, 반도체 제품 개발팀, 제조·양산 연구원들이 전원 투입돼 시간 개념 없이 일한다. 막 양산된 신제품의 수율(정상제품 비율)을 최단기간 내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근 이관 작업은 예전처럼 속도감 있게 진행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물리적인 시간 제약이 최대 난관이다. 이관 작업은 목표 수율이 나오기 전까지 시도와 실패, 원인 분석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또 종전에는 10명이 약 100시간 투입했다면 지금은 같은 인력으로 80시간가량 일할 수밖에 없다. 가용인력을 최대한 투입하고 탄력 근로제 등을 적용하지만, 이관 작업에서 돌발상황이 비일비재해 현장 대응이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일부 반도체업체들은 이관작업에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불량품 없이 생산하는 기간을 앞당겨야 시장 선점 효과와 수익이 수직 상승할 수 있어 이는 회사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법을 준수하려면 이관 작업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이 경우 실적을 일부분 포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인력 문제도 이중고다. 근무시간을 늘릴 수 없으니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하지만 반도체업계는 슈퍼사이클(장기호황)로 몇 년째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업종 특성상 높은 숙련도가 필요해서 신규 인력을 뽑는다 해도 바로 투입할 수도 없고 다른 업무와의 전환 배치도 힘든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취지로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지만, 산업현장과의 괴리는 크다”며 “중국의 추격과 기술 경쟁 격화 등 전쟁터 같은 반도체 시장 상황을 헤쳐나가기에 적합한 제도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예상치 못한 폭염으로 주문량이 폭주한 에어컨 제조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가전업체들은 주 52시간에 맞춰 연중 생산 체제를 가동해 올여름 물량을 미리 만들어 놓았지만, 가마솥더위가 길어지면서 급증한 주문량을 뒤늦게 맞추기 급급해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 대형업체들은 냉장고와 세탁기 생산라인 직원들을 단기간 교육해 에어컨 생산 라인에 급히 배치했지만, 중소업체들은 인력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기업들 처지에서는 기존에 투입하지 않았던 인력·재고 관리 비용을 별도로 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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