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10월 28일 경남 통영에서 출생한 박경리(사진) 선생은 스스로 자신의 출생이 불합리했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애정이 없는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어머니에게 적의에 찬 감정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산신에게 빌어 꿈에 흰 용을 보고 너를 낳았으니 비록 여자일망정 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선생은 자신을 증오하고 학대하던 남자의 자식을 낳게 해주십사고 애원한 어머니를 경멸했다고 한다. 선생은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인한 고독 속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일’에 매달렸다. ‘아궁이며, 이불 속이며 노트를 감추어 가면서 매일 일기같이 시를 썼고, 시는 위안이었으며 희망을 잃지 않게 해 준 버팀목’이었다고 한다.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이듬해 딸 김영주를 낳았다. 1950년 수도여자사범대학 가정과를 졸업한 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6·25전쟁 통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을 잃게 된다.
이후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이 현대문학에 발표돼 문단에 나왔다. 이어 단편 ‘불신시대’ ‘영주와 고양이’ ‘암흑시대’ 등의 문제작을 계속 발표했다. 1962년 ‘김약국의 딸들’에 이어 1963년 단편 14편을 모아 소설집 ‘불신시대’를 펴내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64년 6·25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 ‘시장과 전장’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 ‘토지’ 집필을 시작해 1994년 완간에 이르기까지 25년간 유방암 선고와 사위 김지하의 투옥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토지 전체를 탈고해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했으며 1999년 강원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세웠다. 환경과 생명사상에 관심이 많아 2003년 4월 문화와 환경 전문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2004년 말 폐간)하기도 했다. 2008년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까지 썼던 시를 담아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발표했다.
1957년 현대문학상, 1959년 내성문학상, 1965년 한국여류문학상, 1972년 월탄문학상, 1991년 인촌상, 칠레 정부 선정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1996), 금관문화훈장(2008) 등을 받았으며,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1999)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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