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황새 방사하는 곳
친환경농법· 정기적 토양검사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메주 쒀
안면도 소금과 황토 사과 사용
조합원 할머니들 포장작업 분주
외지인에 인기…사업영역 확대
지난달 20일 오후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 백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암자 ‘쌍지암’을 찾았다. 고즈넉한 풍경 소리, 법당 아래 연못에 피어난 연꽃, 단정하게 가꾸어진 산책로 사이로 산 아래 멀리 펼쳐진 푸른 들녘이 여름 산사의 운치를 더하는 가운데 한쪽에서 갑자기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산사에 자리 잡은 이색 마을기업 ‘쌍지팡이 협동조합’ 대표 선묘(57) 스님과 조합원 할머니들이 모여 장독대에 담가둔 전통 된장을 퍼내 포장하는 작업을 분주하게 벌이고 있었다.
쌍지팡이 협동조합은 지난 2015년 쌍지암을 중심으로 주민 조합원 28명이 함께 결성한 마을기업이다.
2016년 마을기업 1차 지원대상으로 지정된 이후 된장, 고추장, 사과 조청 등을 만들어 도시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 주민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농민들은 판로를 확보하며, 소비자들에게는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마을기업이다.
마을기업이 위치한 예산군 광시면은 천연기념물 199호 황새를 번식시켜 방사하는 사업을 벌이는 15만㎡ 규모의 황새 공원이 2014년 들어선 곳이다. 황새 보호를 위해 농약을 쓰지 않는 친환경 농법을 시행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토양검사를 실시하고 있어 이곳 농산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공원 조성 이후 매년 1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도 됐다.
선묘 스님은 “황새 공원이 들어선 것은 잘된 일이지만 대규모 공원이 들어서면서 삶의 터전을 내주게 된 어려운 주민들도 있었다”며 “이들의 자활을 도우려는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낸 것이 마을기업 창업이었다”고 창업 동기를 밝혔다.
여승의 몸으로 20년 전인 1998년 쌍지암을 창건해 주지를 맡으며 현재 신도수 3000명 규모로 사찰을 키운 선묘 스님은 “사찰과 주민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지내다 보니 수행에 힘써야 할 불자가 된장, 고추장을 파는 마을기업 사장까지 됐다. 마을 할머니가 쌍지팡이를 짚고 일하시는 것을 보고 마을기업 이름을 지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쌍지팡이 협동조합의 주력 제품은 사과 고추장, 전통 된장, 조청 등 전통 장류식품이다. 된장은 매년 12월에서 1월 사이 겨울철에 조합원들이 직접 농사지은 메주콩 2000㎏으로 메주를 쑨다.
물에 불린 콩을 무쇠솥에 넣어 삶아 메주를 만들고, 사과 조청도 달인다. 깊은 장맛을 내기 위해 두 달간의 숙성 과정을 거친 메주는 춘삼월 장독대의 소금물에 담긴다. 산사의 햇빛과 바람, 구들장의 온기를 받으며 어여쁜 곰팡이 꽃을 피워낸 메주에는 정성과 불심까지 담겨 있어 깊은 맛이 안 날 수 없다. 소금은 중국산이 아닌 안면도 소금을 쓰고, 사과 고추장에도 낙과가 아닌 예산 황토사과를 쓴다.
마을 어르신들로 구성된 조합원들은 일당 4만 원 정도를 인건비로 받는다. 쌍지암 양지바른 공터에 자리 잡은 60여 개의 장독대에는 이렇게 정성들여 빚은 장류가 가득 차 있다. 방부제를 전혀 넣지 않은 친환경 식품이다. “좋은 재료만 쓰다 보니 공장 제품에 비해 값이 비싸요. 사과 고추장 1㎏에 3만5000원을 받고 있는데 재료비와 인건비를 빼면 이익은 거의 남지 않는 구조지요. 하지만 지역 어르신, 농민, 도시 소비자가 다 만족하고 있어 불만은 없습니다. 올해 2차 마을기업 지정을 받으면 황토 숙성장과 저온 보관시설을 지을 수 있어 규모를 더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작업장에서 만난 신순옥(76) 할머니는 “쌍지암에서 나오는 물은 암반수로 물맛이 좋아 장 담그는 데 제격이고 특히 사과 고추장은 닭볶음탕, 떡볶이용으로 인기가 좋다”며 “이익을 남기기보다 농촌 노인들이 서로 도와가며 함께할 수 있고, 먹거리도 나눌 수 있는 교류의 장 역할을 해줘 늘 이 일이 기다려진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이사를 맡고 있는 윤권식(65) 씨는 “유전자변형식품(GMO) 걱정 없는 장류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일자리를 나누고 안전한 먹거리도 나누니,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노인들과 함께 마을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다. 할머니들이다 보니 손에 힘이 부족해 메줏덩어리를 부수는 일도 버거워한다. 선묘 스님은 대량으로 장을 담그는 노하우에 대해 묻자 “나 할 줄 몰러, 할머니들이 다 했어. 저분들이 장맛 내는 데는 최고 선수여~”라며 웃었다.
쌍지팡이 협동조합의 사업영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사찰 계곡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를 체험관광 자원화한다는 아이디어도 구체화되고 있다.
생강 고추장, 옻 된장, 가루 된장, 가루 고추장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좀 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생산과정에 참여하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선묘 스님은 “운영에 참여하는 마을 주민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황새 공원과 사찰, 친환경 농업 기반의 전통 장류 생산 등을 결합한 마을기업으로 농촌 지역의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예산 = 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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