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작가가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 장편 ‘해리’를 출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5년만의 신작소설 ‘해리’펴낸 공지영
가톨릭 사제·장애인봉사자 등 민주주의 탈 쓴 악인 신종사기 극우 정치인보다 더 혼란 야기
천주교계 비리·대구희망원 등 소설속 사건들 實話들에 기초 SNS 현실참여 본인모습 반영
“이재명스캔들 개입 후회안해 벌거벗은 임금님이 지나가면 ‘벌거벗었네’ 소리치는게 나”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55)이 30일 등단 30주년을 기념하는 새 장편소설 ‘해리’(2권·해냄)를 발표했다. 전작 ‘높고 푸른 사다리’ 이후 5년 만의 신작으로, 열두 번째 장편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치열한 취재를 통해 썼다는 이 소설은 작가로서의 공지영과 현실에 발붙인 인간 공지영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불의한 인간들이 쏟아내는 부정의 카르텔을 포착하고 이에 맞서는 약한 자들의 투쟁이 골자인데 이는 마치 SNS를 통해 현실 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공 작가의 모습과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많은 사건이 실제로 사회를 발칵 뒤집었던 실화들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적 집념과 상상력이 돋보인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잇따라 벌어진 천주교계의 비리와 성폭행 사건, 인권 유린 논란이 불거졌던 대구희망원 사건, 불법 시술과 아동 학대 혐의가 제기됐던 전주 목사 봉침 사건 등이 소설 속 사건과 이리저리 겹친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인 백진우는 검은 수단과 로만 칼라를 입은 성스러운 신부지만 모금한 돈을 빼돌리고, 여자를 탐하는 악인이다. 공 작가는 “이 소설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선(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실은 악(惡)이라고 묘사된다. 대표적인 게 가톨릭 사제, 기자, 장애인 봉사자 등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위선을 행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 이는 극우 정치인보다 우리를 더욱 혼란하게 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역시나 사회성이 짙었던 전작 ‘도가니’(2009)와의 연결고리도 공 작가가 ‘이스터 에그’(숨겨놓은 메시지)처럼 배치한 부분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 ‘도가니’에서 등장했던 가상의 도시 ‘무진(霧津)’이다. 짙은 안개에 싸인 무진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부정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또 ‘도가니’에서 사건을 파헤쳤던 여주인공 서유진이 동명의 인권센터 직원으로 재등장한다. 공 작가는 “‘도가니’가 폭력·비리와 싸우는 과정을 다뤘다면 이번엔 당사자들의 위선과 거짓말을 더 탐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연상시키는 삽화와 디자인이 등장하는 것도 작가로서 새로운 시도다. 소설에서 SNS의 글과 대화는 사건을 풀어나가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페이스북의 이미지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인격의 이중성을 암시한다.
공 작가의 인간적 고뇌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공 작가 자신과 연결돼 있다. 인터넷 매체 기자로 사건을 추적하는 한이나는 불의에 눈감지 않고 과감하게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현실의 공 작가와 비슷하다. 또 한이나의 엄마인 오승화 화백은 공 작가 스스로 “페르소나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밝혔다.
공 작가는 최근 ‘김부선-이재명 스캔들’에서 적극적으로 김부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진보 진영의 비난을 받았다. 일부에선 그의 작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작가로선 적지 않은 압력이었다. 그러나 그는 피해 가지 않았다.
“한 여자를 오욕에서 구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것 때문에 제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걸 고민했으나 만약에 그런 일들이 매도되는 세상에서 책이 잘 팔린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한이나는 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의 병구완을 위해 고향 무진을 찾는다. 거기서 백진우 신부 때문에 딸을 잃었다는 최별라를 만난다. 최별라에 따르면 백진우 신부는 진보의 탈을 쓴 위선자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역시 자원봉사자인 척하는 여자 이해리가 있다. 이해리는 어릴 적 한이나의 친구였다. 한이나는 사건의 뒤에 뭔가 석연찮음이 있음을 감지하고 추적한다. 하지만 일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팽팽한 긴장감이 스릴러 같다.
공 작가는 “SNS 발언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제가 워낙 벌거벗은 임금님이 지나가면 ‘벌거벗었네’ 하고 소리치는 사람이라 그렇다. 그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560쪽, 2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