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학교는 예(禮)와 악(樂)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예가 무너지고 악도 사라진 지 오래고, 오로지 과거시험 준비 장소로 전락하였다.”
정약용은 수령의 큰 책무로 인재 육성을 꼽았다. 수령칠사, 즉 고을 수령이 꼭 해야 할 일곱 가지 책무 중 세 번째가 학교 일으키기다. 먼저 먹고살 만하게 해서(農桑盛) 인구를 늘린(戶口增) 다음 학교를 일으켜(學校興)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울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및 친구와 우애롭게 지내는 법, 시 낭송하고 좋은 문장 익히기, 그리고 활쏘기 등이다. 인성과 문학, 무예가 중심 커리큘럼이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을 익히는 방법이다. 정약용에 따르면 옛날 요순시절 학생들은 악무(樂舞)를 통해 그 내용을 익혔다. 노래 부르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배운 이야기를 내면화하고, 춤 동작을 통해 체력과 무예를 함께 닦았던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흥학이 주는 사회문화적 효과다. 중국의 양언관이 상주 자사로 부임했을 때 일이다. 고을 사람들은 남의 험담이나 일삼고 만 가지로 소송을 걸어 인심이 험악했다. 그가 맨 먼저 한 일은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인근 명사를 초청해 고을 학생들에게 경전과 역사를 가르치게 했다.
매 계절에 한 번씩 학생들을 관아에 초청해 글을 짓게 했는데, 글이 우수한 자는 자기 근처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게 했다. 반면 쟁론이나 일삼고 배우기를 게을리한 자는 마당에 앉게 하고 채소 음식만 주었다. 그렇게 한 지 몇 년 만에 고을의 풍속이 크게 고쳐졌다고 한다.
‘목민심서’에는 책 읽는 소리를 흘러넘치게 하는 흥학의 방법으로 고을 풍속을 변화시킨 사례가 여럿 소개돼 있다. 인심이란 강물과 같아 끊임없이 맑은 물이 흘러 들어가지 않으면 고여서 썩게 된다. 희망 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고 음악과 무예로 기상을 닦는 차세대가 많은 고을치고 풍속 나쁜 곳은 없다는 게 정약용의 관찰이었다.
차세대에게 가언선행(嘉言善行), 즉 고전 속의 통찰력 있는 말이나 성공 사례를 들려줘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 나아가 나라 인심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세종의 신념이기도 했다. 세종은 우선 자녀 교육에 이야기 들려주기 방법을 적용했다. 그는 세자에게 두 명의 스승을 붙여 고금의 통찰력 있는 말과 성공 사례를 번갈아 가며 들려주게(陳) 했다. 민간의 실제 생활을 이야기 형식을 통해 깨닫게(說) 하는 것도 스승의 역할이었다.
재위 중반부의 충격적인 사회사건인 ‘김화의 아버지 살해사건’에 대한 대응책이 그 사례다. 세종은 집현전으로 하여금 듣고 배울 점이 있는 이야기를 수집해 편찬케 했다.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바가 있도록(觀感)” 100여 가지 이야기를 삽화를 곁들여 소개하게 했다. 세종 재위 기간 내내 지속된 삼강행실도 프로젝트는 좋은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반복해 들려줘 그러한 말과 행동이 공동체를 위해 가치 있고, 내게도 유익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려는 고차원의 사회 기풍 혁신 전략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어떤가. 대학입시로 향하는 긴 터널 앞에서 삶의 기본기인 인성이나 문학, 무예를 익히는 공부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각 가정에서는 자녀의 입시공부를 사실상 도맡은 사설 학원비를 마련하느라 부모 등골이 휜다. 이러고도 희망 어린 미래를 이야기하는 차세대, 험악하지 않은 나라 풍속을 바랄 수 있을까.
학습 현장에서 동떨어져 있는 교육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지역 교육청·학교·학부모가 학습협력체를 만들어 삶의 기본기를 키우는 교육, 지역 경제를 살리는(農桑盛) 학습, 그리고 지역 인구를 늘릴 수 있는(戶口增) 배움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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