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회의 의결 안거치고
법관대표회의서 공개 결정
사법행정의 민낯만 드러내
수사정보 비공개 법 위반도”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된 문서파일 410건 중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96개 파일을 31일 추가 공개하자 상당수 판사가 1일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며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김명수 대법원장과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주동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 때문에 불필요한 사법행정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법원행정처의 무리한 행태가 사법불신을 자초한 만큼 대놓고 반발하기도 어려워 냉가슴앓이만 깊어지는 모양새다.

사법행정의 내밀한 영역까지 공개된 데 대해 판사들은 “부끄럽다”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1·2심에 그치지 않고 상고심까지 제기하는 국민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하는 등 부적절한 표현이 적힌 문건이 공개되자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이든 사법행정이든 각자 업무를 볼 때 스타일이 있고, 그 과정에서 소위 ‘초를 친’ 보고서들을 만들기도 한다”면서도 “한 기관의 내밀한 행정영역의 민낯이 까발려진 것 같아 민망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판사는 “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문건들을 추가로 공개한다고 설명했는데, 문건들을 보면 실제 실행까지 이어졌는지 아닌지 알 수 없고 검토·대응 전략을 세운 게 대부분”이라며 “어디가 남용됐다는 건지, 이게 범죄 혐의가 성립할 수 있는 건지 쉽게 납득되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결국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법한 행정 사항들을 공개해서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건 공개의 적절성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처음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가 다시 공개하기로 결정을 바꾸는 데는 어떤 사정변경이 있어야 한다”며 “지난번에는 사법행정의 특수성상 공개할 경우 문제 소지가 있으니까 비공개가 적절하다고 했으면서, 이번엔 제대로 된 의사 결정도 없이 공개해버렸다”고 지적했다. 행정처의 공개 결정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지난달 23일 임시회의에서 공개 요구 안건을 의결한 데 따른 후속조치로 보인다.

법관회의의 대표성 등 성격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법관도 많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의결기구인 대법관회의를 거치지 않고 자문기구에 불과한 법관회의의 요구를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결정했다”면서 “앞으로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주를 이루는 법관회의 말만 듣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경지법의 한 단독판사는 “법관회의 의결 당시 전체 119명 가운데 85명만 참석했고, 그 가운데 반수를 겨우 넘긴 결과로 나머지 문건에 대한 공개 요구를 의결했다고 전해 들었다”면서 “대표성이 있는 의결이었는지, 적절한 의견수렴 없이 성급하게 공개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실정법에 어긋난 조치라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정보보호법상 검찰 수사와 감사 등이 진행 중일 경우 그 대상 정보는 비공개가 원칙인데, 행정처가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특히 사법부의 자체 조사에 동의하며 비밀번호 등을 제공했던 문건 작성 당사자들이 ‘과연 전체 공개까지 동의했는지’에 대해서는 향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리안·김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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