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

2022년 수능 과목 결정을 앞두고 고교 교과과정에서의 문·이과 통합이 다시 화제다. 학습량을 줄여주기 위해 융합과학, 융합사회 과목을 가르치되 수학이나 과학을 줄인다는 등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의견 일치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수포자’ 대책으로 수학을 쉽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과 수학은 모든 과학적 사고의 기반이므로 더 잘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생물학자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두뇌는 신경을 쓸수록 신경 연결망이 강화되고, 강화된 신경망은 논리적, 합리적 사고의 근간이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본다. 아무튼 문·이과 통합 교육은 세계적 추세에 맞는 흐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학습으로 만들어지는 미래 세대는 균형 잃은 사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겉으로 달라 보이지만 사실 같은 곳을 바라본다. 인간에 대한 탐구, 자연의 이치를 찾아가는 것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근간이다. 인간은 끊임없는 호기심의 존재다. 어떻게 지구가 지금처럼 만들어져 있는지, 인간의 뇌는 어떻게 다른 생물들과 다른 모양으로 생겨났을지 등 모든 것이 궁금하다. ‘어떻게’라는 질문과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이다. 이 둘은 고대 철학에서부터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종의 기원’을 저술한 찰스 다윈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과학은 위험하다. 우생학이 대표적 예다. 우생학이란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이 주창한 이론으로, 선별적 번식으로 인간 종을 진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알량한 유전학적 지식으로 인간을 개량하겠다는 정책이 100년도 안 된 과거에 진행됐다. 1930년대 미국 수십 개 주에서는 어설픈 정신 감정을 거쳐 집단 수용과 불임시술을 광범위하게 진행하면서 인권 탄압의 가장 악랄한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기도 했다. 과학적 진실을 외면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상실되면 추악한 인간성 말살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 반면교사다.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다는 엄청난 연구논문이 1997년 2월 영국의 학술지 네이처지에 발표됐을 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볼 수 있었다. 복제양 돌리는 의학적 가능성을 크게 넓혀 주었지만 인간의 복제 가능성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논문 발표 후 한 달이 지나기 전 1997년 3월 미국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돌리를 만든 이언 윌머트 박사는 의학적 응용 가능성을 인정하되 인간 복제는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개진하기에 이른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조화가 가져온 ‘중심 잡기’였다. 그 후 10년도 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희대의 줄기세포 관련 과학적 사기 소동에서는 이러한 균형을 볼 수 없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되는 국가 연구비의 규모와 인문학에 지원되는 연구비의 규모를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연구 투자에 밀려 균형 있는 사회 발전에 중요한 인문학에 대한 투자가 소홀한 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농담처럼 자연과학은 ‘자연스러움’을 밝히고,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추구한다고 한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자연과학도인 필자의 눈높이로 보아도 자연스러움과 인간다움은 실은 같은 것이다. 인간다움에 대한 투자가 결코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적 삶의 향유를 위한 필수적 요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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