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구청장은 사회 곳곳의 변화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정치적 내공을 쌓아온 풀뿌리 정치인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고 외환위기 여파로 퇴사하는 많은 동료를 보면서 사회적 약자들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이 구청장은 196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정읍 호남고를 졸업하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시위대 중에도 최일선인 투쟁위원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결국 학내 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돼 유죄 판결을 받고 10개월 동안 실형을 살아야 했다.
이 구청장은 대학 졸업 후 인턴사원을 거쳐 신영증권에 입사해 7년간 영업 부문에서 근무했다. 대다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사회적 낙인 등으로 인해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한 것과 비교했을 때 특별한 경력이다. 스스로도 “정치와 실물경제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알 수 있었던 시기”라고 회고할 정도. 잘나가던 증권맨이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회사를 퇴직했다. 이후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17대 국회에선 이상경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국정 운영 경험을 쌓았고, 이를 바탕으로 2010년 서울시의원에 당선됐다. 교통위원회 소속이었던 초선의 이 구청장은 서울메트로가 수의계약을 통해 재향군인회에 37년 동안 지하철역 청소 용역을 독점하도록 한 것과 청소 노동자들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받으며 성희롱까지 당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연간 271억 원의 막대한 이익이 걸려 있던 재향군인회 관계자들은 의원실로 몰려와 항의하고, 자택으로 협박성 우편물을 보내는 등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동료 의원들의 만류에도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독점계약 해지를 끌어냈다. 이후 서울시는 지하철역 환경 정비를 전담하는 ‘서울메트로환경’을 서울메트로의 자회사로 신설한 후 기존 미화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 관련 업무를 전담시켰다. ‘원칙이 반칙을 이긴다’는 그의 좌우명이 빛을 본 것이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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