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5월 조선국방경비대 육군정보처 내에 대공(對共) 업무를 전담하는 ‘특별조사과’가 설치된다. 그해 11월 ‘특별조사대’로 바뀐 뒤 이듬해 10월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로 개편돼 간첩 체포 및 부정부패 색출을 맡게 된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육군본부 직할 ‘특무부대’로 독립해 공비 소탕 임무까지 담당하게 됐다.
1960년 7월 육군 방첩부대로 바뀐 이후 베트남 파병, 1·21 북한 기습사건 진압 등에도 앞장섰다. 1968년 9월 육군보안사령부로 개칭하면서 군내 보안 지원과 방첩 작전, 군내 첩보 수집이라는 기능의 틀을 갖췄고, 1977년 해·공군 관련 기능을 통합해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된다.
보안사는 1979년 전두환 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 기반이 되면서 군뿐만 아니라 정부 권력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됐고, 한편으로는 경원과 비난의 대상이 됐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파문이 커지자 다음 해 국군기무사령부(國軍機務司令部·Defense Security Command)로 이름을 변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계엄령 검토 문건이 공개돼 기무사가 정치적으로 흔들리면서 또다시 이름이 바뀌는 처지가 됐다. 상징적으로 힘을 빼는 차원에서 보안·정보 지원 쪽을 강조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바꾼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이름이 바뀌고, 조직원이 물갈이되더라도 기무사 기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기무사개혁위는 지난 2일 현 사령부 체제 유지, 국방부 보안방첩본부로 변경, 외청 형태로 창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청와대는 첫 번째 안을 선택했다. 여권이 계엄 문건 작성을 내란음모, 쿠데타 기도로까지 몰아가면서 대대적 개편을 예고했지만, 군을 장악하려면 기무사의 현재 기능이 모두 다 필요했던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집권 전에 군과의 ‘커넥션’이 약했다.
해외 출장 중 기무사 특별조사단 구성을 긴급 지시했던 문 대통령은 또다시 휴가 중에 기무사 해편(解編)을 지시했다. 해편이라는 말이 생소하다. 국어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는 말을 누가 제시했는지를 알면, 기무사 개편 방향을 누가 잡고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뜻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국정원, 검찰 등 다른 권력기관들과 마찬가지로 기무사도 ‘내 편’으로 만들라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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