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지난주 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3일을 쉬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중간에 하루는 나와서 일을 하셨다지요?

저는 정 장관과 친면이 없습니다만, 지난 2004년 아주 잠깐 일을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여성 국회의원 100인 만들기’ 위원회에서였습니다. 위원회는 남녀 5명씩 이뤄졌습니다. 남성 쪽에 이세중, 박원순 변호사 등이 있었고, 여성 위원 중에 당시 여성단체연합 대표였던 정 장관께서 계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저는 30대 남성 할당으로 위원에 추천된 게 아닐까 짐작했으나, 굳이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대신에 실무진이 건네주는 ‘여성 정치인 후보 자료’를 열심히 살폈습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자·타천으로 추천된 여성들에 관한 자료였는데, 우리 위원들은 얼마 안 돼서 크게 낙담했습니다. 여성 의원 100명을 만들기는커녕 국민에게 후보로 내밀 여성 100명을 찾아낼 수도 없었던 탓입니다. 사실 여성 의원 100명 만들기는 ‘꿈’이었지요.

최근 과격한 페미니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보며, 그 꿈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우리 사회 각 영역에서 여성 진출이 괄목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성평등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도상(途上)에 있으니까요.

정 장관께선 어느 인터뷰에서 “여성들의 성평등 의식이 빠른 속도로 높아진 데 비해 우리 사회 저변의 문화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더군요. 남성들이 누렸던 기존 권위와 혜택이 위협받는다는 위기감이 여성 혐오 현상으로 나타난다고.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일각의 남성 우월주의자들이 내세우는 혐오를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는 쪽의 이야기를 확산하는 게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관께서 표현하신 ‘서로에게 말 걸기’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초점을 더 두는 것이 남성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쉽다는 것이지요.

물론 현재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영페미(젊은 여성주의자)는 이런 말에 고개를 가로저을 것입니다. 한국 사회 남성 기득권의 심층을 모르는 안이한 시각이라고. 이들은 성평등이 ‘도상’에 있기는커녕 여전히 ‘후진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와 워마드 회원들이 그렇지요. 그들이 지난 2015년부터 펼쳐온 미러링 전략, 즉 남성들의 폭력적인 언어를 빼앗아 도로 갚아 주자는 시도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페미니즘 이슈를 다시 뜨겁게 불러일으켰으니까요. 각종 매체가 “저 집단은 도대체 왜 저런 끔찍한 표현행위를 하나”를 주제로 일련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것은 그 효과의 방증입니다.

오랫동안 페미니즘과 거리를 두고 살았던 저도 이번에 모처럼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20대부터 60대까지의 여성주의자들이 쓴 책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과 영페미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근본 없는 페미니즘’을 읽어봤지요. 이를 통해 미러링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한국 페미니즘의 절박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지요.

그러나 미러링의 폭력적 표현이 더 유효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보다 ‘끔찍함’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에 우호적이었던 이들조차 고개를 가로젓고 있습니다. 지난 4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여성들이 성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극단적 표현을 자제한 것은 그런 상황을 살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성운동을 오래 해 온 정 장관께서는 성차별 현실을 꾸준히 지적하면서도 남성과의 동행을 통해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해왔습니다. 영페미들은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며 여성들만의 연대로 남성 권력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요. 그 사이엔 큰 간극이 있습니다만, 그걸 지혜롭게 메우며 모둠살이의 미래에 기여하는 쪽으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페미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할 것입니다.

장관께서는 그 소통을 위해 혜화역 시위 현장에 갔다가 이른바 문빠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시위대 일부가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는 현장에 왜 갔느냐는 것이지요. 이런 따위의 맹목적 비난에 위축되지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치권에 빚이 없는 장관께서 권력과 그 추종 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해나가셨으면 합니다. 내각의 장관보다 청와대 행정관이 더 힘세 보이는 권부의 비정상적 상황을 깨트리려는 노력을 비상하게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진짜로 성평등 세상이 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이 오면, 저처럼 우리 사회 이념 과잉에 염증이 나서 페시미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이 절로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까요.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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