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시시한 시대일수록/ 시시하지 않은 시를 써야 한다.”
최승호 시인이 5년 만에 신작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 지성사·사진)를 내놓으면서 시집 첫머리에 쓴 ‘시인의 말’이다. 시인의 바람처럼 시집은 시시하지 않다. 시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촉수는 예민하다. 이 예민한 촉수는 지금 이곳과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닿는다. 분노할 곳에 분노하고, 비판할 것을 비판하면서. 하지만 지나치게 슬퍼지려 할 땐 유머를 꺼내 들며 허무주의로 떨어지는 것을 견제한다. 그래서 시집은 거울 같다. 시집을 펴든 독자라면 누구라도 최소한 몇 편에서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
“모든 게 다 썩어도/ 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 표제작 ‘방부제가 썩는 나라’의 전문이다. 이 시 제목에 시인이 하고픈 말이 꽉 차 있다. “썩으면 안 되는 것까지 썩은 곳”,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라고 시인은 설명한다. 그 이유는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고, 그 이상의 가치관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록된 시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의 모습을 비춰낸다. 그 속엔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드는 사람도 있고, 고단한 직장인도 있고, 과로사하는 백수도 있고, 부모 품 안으로 돌아가는 캥거루족도 있고, 고독사하는 노인, 황혼 이혼한 부부도 있다. 모두 시 한 편 한 편의 주인공들이다.
시집에선 유난히 유머가 돋보인다. “구도자는 도에 혹사당한다/ 애국자는 국에 혹사당하고/ 백수는 과로사한다’(‘백수는 과로사한다’), “삼겹살 집으로 멧돼지가 돌진했다/ 대담한 놈이다/ 절망한 놈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놈이다/ 잃어봤자/ 삼겹살 정도?”(‘죽어봤자 고깃덩어리’)같이. “나이 들수록 삶에 관심이 간다”는 시인은 “삶의 현실은 부조리하고 아이러니하고, 어둡고 누추하지만 그래도 허무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며 “절망과 슬픔을 견제하는 장치로 유머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를 쓰면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눈물과 웃음으로 쓴 시에 대해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비평가 김우창 선생이 시는 ‘일상을 꿰뚫는 섬광 같은 깨달음’이라고 했다. 내 시들이 누군가의 일상을 꿰뚫고 번쩍하고 빛나기를, 그리고 독자들에게 쿵 하고 다가가기를 바란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