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쯤 일본 와카야마(和歌山)에서 무심코 서점에 들어갔다가 눈길을 끄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일본 아사히(朝日) 출판사에서 나온 ‘책의 미래를 찾는 서울여행’이란 책이다. 책 출간과 평균 독서량이 월등한 일본이 ‘책의 미래를 한국에서 찾는다’니. ‘한국은 공전(空前)의 책방 붐’ ‘그들은 왜 (서점을 차려) 독립했을까’가 책의 부제다. 과연 그런가. 지난 20년 사이에 전국 서점의 70% 이상이 문을 닫았는데도 지금 한국은 책방 붐인가.
산업적으로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체감만으로 말하자면 한국이 ‘책방 붐’이라는 데 동의한다. 책방 붐은 서울 대신 지방에서 더 거세다. 붐을 이루는 건 ‘독립서점’이라 불리는 동네 책방들이다. 동네 책방은 요즘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이른바 ‘핫스폿’이다. 제주에만 여행자를 겨냥한 작은 책방이 40여 곳에 달한다. 책을 꽂아두고 커피나 디저트를 파는 북카페나 숙박을 겸하는 북 스테이까지 합친다면 그 수는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심지어 술병을 들고 책을 보는 술집 겸 북카페까지 있다. 가히 ‘책’의 열풍이라 할 만하다. 제주만 그런 게 아니다. 속초에도, 강릉에도, 광주에도, 완주에도 여행자를 겨냥한 작은 책방과 헌책방, 북카페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여행 트렌드에는 흐름이 있다. 펜션 여행이 대세인 적이 있었고, 체험 여행이 붐을 이룬 적도 있었다. 이어 캠핑 붐과 걷기 열풍이 유행처럼 여행시장을 휩쓸었다. 그렇다면 이즈음의 여행 트렌드는 단연 ‘책’이다. 실제로 이달 초 제주의 책방 겸 카페 ‘인공위성 제주’에서 한 달 예정으로 동네 책방과 북카페만 다니면서 제주를 여행하는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다. 동네 책방의 매력은 ‘큐레이션’에 있다. 동네 책방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책을 분류하고 진열한다. 책은 대형 서점처럼 소설, 에세이, 과학, 실용서 등으로 건조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 ‘내 삶은 왜 따분할까’란 제목의 책꽂이를 만들어 모험 레포츠, 명상, 낱말퀴즈, 외국명소 사진집, 인도 여행기 등의 책을 꽂아놓는다. 진열방식만 바꿨을 뿐인데도 책은 훨씬 더 매력적이다.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봤는데 당신도 좋아할 것’이라고 책을 손님 손에 쥐여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이럴 때 작은 서점은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플랫폼이 된다. 대형 서점에 책이 훨씬 더 많고, 인터넷 서점에서는 책값의 10%를 할인해주지만, 사람들이 기꺼이 여행지의 동네 책방에서 책을 사는 이유다.
책이 이즈음 가장 뜨거운 여행 트렌드로 부상하는 바탕에는 ‘혼행(혼자 여행하기)’의 확산이 있다. 여행의 패턴 변화가 ‘여행’과 ‘책’의 결합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식을 넘어서 과도한 탐식에만 몰두하는 여행에 문화가 자연스럽게 끼어든 건 어찌 됐든 반가운 일이다.
여행의 경제적 효과는 고정 인구 감소로 위축된 경기를 유동인구(여행자)의 유입으로 소비와 유통을 늘리고 생산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달성된다. 그렇다면 지역의 문화 소외도 마찬가지로 문화소비자를 유입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자들의 관심을 책에서 미술로, 공연으로, 음악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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