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여름에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공항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덥고 습해서 숨이 턱 막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나라 여름 날씨가 그때의 대만과 비슷해졌다. 서울에서 4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이렇게 빨리 관측되리라고는 여러 기상 자료를 분석해온 필자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반도에서 북한 지역을 제외한 면적은 동서로 300㎞, 남북으로 400㎞ 정도로 좁지만, 대기과학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특이 기상현상이 발생한다. 태풍, 장마(몬순), 집중호우, 가뭄, 폭염, 한파, 황사, 미세먼지 중에서 한두 가지의 영향을 거의 1년 내내 받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기단이 자리잡고 있다. 여름철에는 북태평양 고기압, 겨울철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다. 또, 우리나라 상공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제트류(편서풍)가 자리잡고 있는데, 시속 200㎞ 이상의 풍속을 갖기도 한다.
지구온난화에 의해 북태평양 고기압과 시베리아 고기압이 크게 변하고 있다. 그 세기뿐만 아니라 영향을 끼치는 시기와 영역도 크게 변하고 있다. 대류권 상층에 위치한 제트류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대규모 기압계와 제트류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우리나라 전반의 기후뿐만 아니라, 특이 기상의 빈도와 세기를 바꾸고 있다. 이번 여름에는 폭염 피해를 봤지만, 다른 해에는 태풍이나 집중호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8, 9월은 본격적인 태풍 시즌이며, 그 후부터 내년 봄까지 우리 시야를 흐리게 할 고농도 미세먼지와 황사를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다.
기후 변화에 따라서 특이 기상이 가장 민감하게 변하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가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심하게 받는 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1904년 이후 관측된 기온을 분석해 보면, 지난 100여 년 동안 연평균 기온이 2도 정도 올랐고, 계절에 따라 그 형태가 크게 달랐다. 봄·가을 기온은 꾸준히 상승해 2∼3도 정도 올랐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1도 안팎에서 계단식으로 상승했다. 여름 기온은 1994년에 한 차례 점프했으며, 겨울에는 1940년대 말과 1980년대 말 두 차례 점프했다. 또한,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번 상승한 기온은 다시 예전의 기온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994년 여름 기후는 그 전년인 1993년과 극단적으로 대비됐다. 1993년 여름에는 장마가 오랫동안 계속돼 많은 비가 내렸고, 기온도 평년보다 1∼2도 정도 낮아서 수해뿐 아니라 농작물의 냉해도 막대했다. 1994년 여름 기온이 갑작스럽게 상승한 이후, 올해까지 비슷한 양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최고기온이나 폭염 일수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1994년 값을 경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여름 기온은 대만이나 동남아 지역과 비교할 만하다. 대만이나 동남아에서는 일상화한 더위와 폭염에 적응해서 살고 있다. 모든 사회·경제적 기반시설과 생활이 폭염과 더불어 지내도록 맞춰져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들 나라처럼 무더위와 폭염이 일상화할 것이란 가정 아래 모든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도심의 기온을 낮추려 한다면, 거리에 물을 뿌리는 한시적 대책에 머무르지 않고 건물 옥상에 나무를 심는 게 효과적인지, 아니면 흰 페인트를 칠하는 게 효과적인지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고, 전력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한다면 탈(脫)원전 정책을 과감하게 재고할 수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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