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위 사진은 홍성원 작가가 타계할 때까지 글을 썼던 경기 김포 고촌 자택의 집필실과 소설 관련 자료 메모 및 초고. 가운데 왼쪽은 필기구와 작품집 사진이며, 오른쪽은 문우들과 함께 산행한 장면(왼쪽부터 김병익, 김주연 평론가, 홍 작가, 고  김치수 평론가, 김원일 작가). 아래쪽 사진의 왼쪽은 홍 작가 묘지에 있는 문학비로 유언이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은 장녀 홍진아 초등학교 졸업식 때 기념촬영을 한 것.  홍진아 작가 제공
맨 위 사진은 홍성원 작가가 타계할 때까지 글을 썼던 경기 김포 고촌 자택의 집필실과 소설 관련 자료 메모 및 초고. 가운데 왼쪽은 필기구와 작품집 사진이며, 오른쪽은 문우들과 함께 산행한 장면(왼쪽부터 김병익, 김주연 평론가, 홍 작가, 고 김치수 평론가, 김원일 작가). 아래쪽 사진의 왼쪽은 홍 작가 묘지에 있는 문학비로 유언이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은 장녀 홍진아 초등학교 졸업식 때 기념촬영을 한 것. 홍진아 작가 제공
홍성원 10주기… 딸 홍진아 작가가 쓴 ‘아빠의 공간’ (上)

책 가득했던 집의 가장 큰 방
책상 앉은 넓은 뒷모습 생생

A4지 한장에 다 적은 초고
불개미떼 같은 종이글 신기

8남매중 장남이었던 아빠
전쟁통에 지독한 가난 겪어

“세상향한 분노는 내 에너지
핍박·야유에 문학으로 대답”

현실의 굴레 벗어나기 위해
‘글에 대한 욕구’ 폭발적 배출

장편1개·단편2개 동시 당선
문학계 전무후무 화려한 등단


올해는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작가 세 사람이 타계한 지 10주년이 된다. 박경리, 이청준, 홍성원이 바로 그 이름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최근 발표한 글에서 “그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 소설 읽기를 피해온 나는 그럼에도 그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행운에 감사하면서 우리 문학에서 민족사적 서사의 시대도 고비를 다했다는 섭섭함을 되씹는다”고 했다. 민족사적 서사의 한 봉우리였던 작가 홍성원의 문학 공간을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홍성원의 장녀인 드라마 작가 홍진아가 글을 썼다. 홍진아는 동생 홍자람 작가와 함께 ‘홍자매’라는 이름으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태릉선수촌’ ‘학교3’ ‘반올림’ 등의 작품을 집필하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해 왔다. 동생이 대학교수로 간 후 홀로 집필한 ‘더킹투하츠’ ‘미래의 선택’ ‘마담 앙트완’ 등으로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홍진아는 새 드라마 집필을 하느라 바쁜 중에도 “아빠인 홍성원 작가의 10주기를 기리고 싶다”며 이번 글을 썼다.

1. 소설가 홍성원의 작업실

아빠인 소설가 홍성원을 떠올리면 늘 집에 계셨던 모습과 함께 아빠의 작업실이 생각난다. ‘아빠방’으로 불렸던 작업실은 집에 있는 가장 큰 방이었으며 매캐한 담배 냄새와 함께 기분 좋은 책 냄새가 났다. 사진에 있는 작업실은 아빠의 암투병 생활 중에 찍은 영상캡처라 책이 많이 보이지 않지만 원래의 아빠 방에는 많은 책이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 한가운데 책상에 앉아 넓은 뒷모습으로 글을 쓰고 계셨다.

항상 신문연재를 하셨던 아빠 덕분에 ‘마감’이라는 말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였다. 그 시간 동안에 우리는 숨을 죽이고 조용히 놀아야 했다. 물론 아빠 방에는 얼씬도 못했다. 하지만 마감이 끝나면 축제가 시작됐다. 글의 노동에서 벗어난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맘껏 놀아주셨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즐거운 산책이었다. 가정적이었던 아빠는 통금이 있던 당시, 우리에게 통금 없는 세상을 보여주시겠다며 통금이 없는 유일한 날 크리스마스에 자정이 넘어 우리를 데리고 나가셨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정 이후에도 길을 걸어 다니는 신기한 사람들을 봤으며 포장마차의 우동이 참 맛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호기심이 많으신 아빠 덕에 고물상에도 가봤고 돌 캐러 작은 돌산에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캐온 돌로 아빠는 직접 도장도 만드셨고 집에는 닭장도 만드셨다. 개는 물론, 토끼도 키우고 닭도 키웠다. 그렇게 우리는 아빠 덕에 풍부한 경험을 하며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아빠는 컴퓨터가 없던 당시,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써내려가셨다. 특히 아빠의 원고 중 신기했던 것은 초고의 모습이었다. 종이가 부족한 게 아닌데도 아빠는 원고지의 뒷면에 불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 아주 작은 글씨로 초고를 쓰고 퇴고도 하셨다. 한 장에 전체 글을 써 봄으로써 구성을 한눈에 확인하려는 작업이었다. 얼마나 글씨가 작은지 A4지 한 장 정도에 단편 정도 되는 분량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자란 나도 드라마 구성을 할 때면 작은 글씨로 빽빽이 신 구성을 하기도 한다.

아빠는 모든 면에서 나의 본보기였으며 길잡이셨다. 항상 아빠가 글 쓰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덕에 나는, 물론 지금은 쓰면 쓸수록 어려움을 느끼지만 어릴 적엔 글을 쓰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 덕분에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곤 했는데 아빠는 꼭 그 원고를 뒤져 보시고는 온통 빨간 줄을 북북 긋고 다시 써오라고 하셨다. 문장이 지저분하다, 주제의식이 없다는 등의 이유였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고작 중학생에게 말이다. 나는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난 후로는 절대 아빠에게 들키지 않도록 내 글을 꼭꼭 숨겨두곤 했다.

또한 아빠는 영화에도 큰 관심을 보이셨다. 당시에는 주말 밤에 명작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영화가 방송되곤 했는데, 그럴 때면 꼭 아빠는 자는 우리를 깨워 영화를 보도록 하고 끝나면 토론을 하셨다. 초등학생밖에 안 되는 애들과 무슨 토론이 되겠냐만 아빠는 항상 우리와 같은 눈높이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시각을 넓혀주셨다. 그러면서 항상 덧붙이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삐딱하게 생각하라고,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면 자신만의 시선을 가질 수 없게 된다고, 항상 한발 떨어져 질문하고 의심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라고 말이다. 아빠의 장편소설 ‘그러나’처럼 모든 것을 한 번쯤은 뒤집어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셨다. 거의 주입식으로 되풀이됐던 이 말 때문에 나는 지금 드라마를 쓸 때도, 물론 잘되진 않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의 작품을 쓰려 노력한다. 하지만 드라마작가로 조금은 먹고살 수 있게 된 지금에도 나는 내 나이대 아빠가 썼던 작품과 나를 비교하면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2. 소설가 홍성원의 가난, 그리고 글 쓰는 원동력

8남매 중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전쟁 당시, 그리고 그 이후로도 지독한 가난을 겪으셨다. 대학에 진학해도 가난은 여전했다. 고려대 영문과 학생으로 가정교사를 하셨던 아빠는 항상 배가 고프셨다고 한다. 학생 집에서 먹다 남은 떡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학생의 부모님들은 선생님 대접한다고 그 당시에는 비쌌던 커피만을 내놨다고 한다. 그 덕분에 빈속에 커피를 네댓 잔 들이켤 수밖에 없었고, 집에 가는 길에 항상 속이 쓰렸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빠의 글 속에 ‘가난’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빠는 그 이유를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진짜 가난은 블랙홀과 같다고, 그게 등장하는 순간 소설이든 영화든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결국은 그 가난의 지긋지긋한 현실에 작품성 등이 모두 먹혀버리고 만다고.

결국 아빠는 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대학교를 중퇴하고 군대에 입대한다. (후에 아빠는 다시 고려대에서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하지만 제대하고 돌아와 보니 더욱 절박한 가난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의 심정을 아빠는 이렇게 묘사한다.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저 수많은 방 중에 내가 쓸 수 있는 방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내 생존 이유를 의심케 하는 모욕적인 야유로 다가온다.(중략) 세상에 대한 노여움은 문학을 내 밖으로 밀어내는 에너지로 쓰일 것이며, 세상이 내게 보내는 핍박과 야유에 대해서는, 나는 보란 듯이 최고의 예술인 문학으로 대답할 작정이다.” (책 ‘홍성원 깊이 읽기’ 중 ‘열린 세상 쪽으로 뚫린 좁고 긴 터널’에서)

아빠는 창작생활의 절대적인 요건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타고난 자질, 두 번째는 피나는 노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라고 하셨다. 원래의 자질과 노력의 성정을 갖고 계셨던 아빠는 이때,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폭발하셨다. 당장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청소년 시기의 억압된 기제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외면하는 세상에 보란 듯이 문학으로 복수하기 위해.

그렇게 아빠는 몇 개의 소설을 단숨에 써내려갔고 한 개의 장편과 두 개의 단편이 세 개의 신문과 문예지에 연달아 당선되면서 전무후무한 화려한 데뷔를 한다. 평생을 전업 작가로 지낼 소설가 홍성원의 시작이었다.

드라마 작가 홍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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