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북·중 접경 도시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에서 북쪽으로 20여 분 정도 거리에 ‘이부콰(一步跨) 즈츠펑광(咫尺風光)’이라고 쓰인 표지석이 세워진 곳에 갔다. 10여m 정도 떨어진 곳의 낮은 철책선이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알렸다. 함께 간 가이드가 “작년까지는 단둥에서 유람선을 타면 저 철책선 안쪽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되돌아올 수 있었는데 올해 초부터 북측 요청으로 유람선 출입을 막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저 멀리 압록강 물길이 희미하게 보였다. “중국 유커들이 강변에 나온 북한 사람들에게 먹을 걸 던져주면서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신세처럼 되자 자존심 상한 북한이 관광을 제한한 거 같다. 엄동설한에 아낙네들이 강변에 나와 언 손으로 빨래하고, 달구지에 배추를 실어 나르고, 아이들은 나와서 구걸했다.”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단둥은 제재의 빈틈을 뚫어 활력을 모색해보려는 움직임이 넘쳐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경제 개발에 ‘올인’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6·12 미·북 정상회담 이후 북·중 접경지역을 집중 방문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미국과 체제 안전이 우선이냐, 비핵화 조치가 먼저냐는 설전만 거듭하면서 비핵화는 답보 상태다. 최근 이란을 방문한 리용호 외무상은 “우리는 미국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핵화에 동의했지만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핵 지식을 보존하겠다”는 발언도 했다.
미국 언론인 돈 오버도퍼가 쓴 ‘두 개의 한국’에 나온 북핵 협상의 역사를 보면 리 외무상의 말은 일부만 진실임을 알 수 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불신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1994년 10월 21일 미·북 제네바 합의(빌 클린턴 정부), 2005년 9·19 공동성명(조지 W 부시 정부), 2012년 2·29 합의(버락 오바마 정부) 등 획기적 전환점에서 핵 개발 의혹을 떨쳐내지 못한 것은 북한이었다. 1994년 5월 미국의 북폭 위기 직전 영변 핵사찰을 위해 북한에 갔던 국제원자력기구의 디미트리 페리코스 동아시아 안전조치시행 담당 국장은 훗날 “북한의 비장의 카드는 바로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의 정확한 양을 외부 세계에서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며, 북한 지도부는 이 카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핵을 깨끗하게 포기했다면 제네바 합의가 농축우라늄 문제로 깨지고, 이어진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으로 9·19 성명과 2·29 합의가 물 건너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거 합의에도 있었던 체제 보장을 이미 확약받고, 20여 년 전 김일성 생전에 경제 개발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려면 불신을 걷어내고 과감하게 비핵화하는 길밖에 없다. 북한이 당장 베트남식 개혁·개방에 나선다 해도 현재 베트남 수준의 경제력을 가지려면 15년이 걸린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단둥에서 만난 한 한국인 사업가는 “한참 잘나가던 대북 사업이 한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막힌 지도 7∼8년이 지났다”며 “비핵화가 이뤄져 대북 제재가 풀리면 다시 한 번 사업을 재개해 돈도 벌고 북한도 돕고 싶은 게 인생의 마지막 꿈”이라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utopian21@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