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代 바뀌어도 변함없는 정치
물꼬 트인 올드보이의 귀환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與野
2020년 의원 평균 연령은 還甲
생각이 더 늙어버린 86세대
젊은 피 위한 새 길 만들어야
지금 우리 사회 중심 역할을 하는 4050세대는 2013년 방영된 ‘응답하라 1994’ 드라마를 보면서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에 빠지곤 했다. 성수대교(1994년)·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삐삐와 시티폰 등 당시 시대상들이 기억 속에 아련하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든 것일 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해 왔다. 모든 부분이 이렇게 빠르게 변화했는데 단 하나 절대 바뀌지 않는 곳이 바로 정치의 영역이다. 최근 정치뉴스를 보면 10년 전이나 20년 전 것을 보는 듯하다. 특정 정당을 넘어 정치권 전반의 문제다.
1970년 중반부터 한국 정치를 30여 년 가까이 지배해온 ‘3김 시대’가 끝난 이후 세대교체가 활발할 것으로 봤던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더불어 1990년대 중후반에 정치에 들어왔던 인물을 중심으로 한 과두(寡頭) 체제가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지속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0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 선대위가 꾸려졌다. 정동영, 이해찬, 손학규 등이 맞붙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정동영이 당선되자 손학규, 이해찬은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정책지원위원장은 김진표, 2020국가비전위원장은 문희상 현 국회의장이 맡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대통령 정책특보였다. 11년 전 정치의 전면에 있었던 정동영 의원은 이제 민주평화당 대표, 손학규 전 의원은 바른미래당 당 대표 후보, 이해찬, 김진표 의원은 민주당 대표 후보로 나섰다. 이들이 대표가 된다면 여야 4당은 ‘올드보이’의 경연장이 될 것이 자명하다. 인물로만 보자면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는 정지된 상태나 다름없다.
다들 “비난을 무릅쓰고 나왔다” “당을 위해 마지막 희생하겠다”고 한다. 자신의 실력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됐고, 도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 동서고금을 봐도 윗세대가 자진해서 나가는 법은 별로 없다. 신진 세대가 치고 올라와 밀어내는 것이 세대교체의 본질이다.
세계적으로 세대교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41) 프랑스 대통령, 쥐스탱 트뤼도(46) 캐나다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32) 오스트리아 총리, 저신다 아던(38) 뉴질랜드 총리 등을 보면 하루아침에 정상의 자리에 등장하지 않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17, 18세부터 정당 활동을 했고 그 속에서 리더십을 인정받고 요직도 거쳤다. 정치경력이 20년 넘는 이도 있다. 특히 이들은 기득권 세력과의 과감한 대결을 선언하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애들은 가라’라는 전통적 우리의 세대 관념과는 너무 다르다.
제20대 국회의원들이 2016년 총선에서 당선됐을 때 평균 연령이 55.5세인데, 2020년 총선이 되면 이들의 평균 연령은 59.5세로 환갑(還甲)에 가깝다.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이 보장된다면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 연령구조가 변하기는 힘들다. 신체적 나이보다 생각이 젊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정치권의 허리를 차지하고 있는 ‘86세대’의 사고는 여전히 1970∼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86세대들은 정치를 선(善)과 악(惡)의 대결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들이 정치를 배워온 시대가 그랬다. 타협과 조정은 이들의 사전에 없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민주화 투쟁 시절 형성된 심판 ‘아비투스’(특정한 사회환경에 의해 형성된 습관)는 민주당의 의식과 행동을 규정하는 제1의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찍이 설파한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되레 신진 세력이 자신의 자리를 혹시나 넘볼까 봐 이들의 정치 진입을 유리하게 만드는 선거연령 18세 인하, 선거구제 개편 등의 이슈에는 관심이 없다. 정년 연장, 일자리 보전 등에서 자신들과 이익 동맹관계인 민주노총, 전교조 등 소수의 조직화 세력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데만 관심이 경도돼 있다.
지금 같은 소선거구제 하에서 신진 세력의 정치 진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앞으로 정당이 노-장-청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 프랑스의 사회당, 영국의 자유당처럼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 올드보이들이 마지막 할 일이 있다면 젊은 피가 돌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