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쥬앙
돈 쥬앙은 호텔의 레스토랑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붉은 머리 여자를 주시한다. “좀 앉아도 되냐”는 질문을 던진 돈 쥬앙은 대답도 듣지 않고 여자의 테이블에 합석한다. 당황한 여자는 일행이 있다며 돈 쥬앙의 무례함에 불쾌함을 표시한다. 그는 여자의 눈을 직시하며 세상에서 가장 노골적이고 로맨틱한 시구(詩句)로 여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여자의 붉은 머리가 얼마나 부드러워 보이는지, 머리의 끝이 닿아 있는 하얀 가슴은 얼마나 자극적인지, 그렇기에 한시라도 빨리 허벅지 사이로 돌진하고 싶다고. 표정이 굳어 있던 여자는 이내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테이블 커버를 말아쥐며 손에 난 땀을 숨기던 여자는 돈 쥬앙을 끌고 방으로 올라가 그에게 몸을 던진다.
제러미 레벤 감독의 1994년 작 ‘돈 쥬앙’(사진)은 1600년대 쓰인 동명 희곡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아니다. 자신이 시대의 호색한 돈 쥬앙이라고 믿고 있는 한 청년(조니 뎁)과 그의 정신과 의사 잭 (말런 브랜도)의 우정을 그렸다. 돈 쥬앙이 자신이 겪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플래시 백 형태로 전달하는 회고록 형태의 영화다. 옛날 귀족의 복장을 하고 고층 빌딩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돈 쥬앙은 잭의 상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다. 왜 죽으려고 했느냐는 잭의 질문에 돈 쥬앙은 “사랑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이유는 사랑 단 하나로,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수 없어 죽으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잭은 자신이 돈 쥬앙이라고 믿고 있는 이 청년이 과대망상과 정신분열에 시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은퇴를 일주일 앞둔 잭은 상담 시간 동안 돈 쥬앙이 들려주는 사랑담, 정확하게 말하면 생생하고 자극적인 ‘성 모험담’에 노쇠한 몸뚱이를 찔끔거리며 빠져든다.
돈 쥬앙은 넋을 놓고 듣고 있는 잭에게 여자의 위대함에 대해 찬양한다. “여자의 실크 속옷은 천사의 날개이며, 날개를 다는 순간 여자의 몸은 부풀어 오르지요. 한없이 부푼 그 몸의 한가운데에 남자가 몸을 던지면 그들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완벽한 결합체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읊조리는 그의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정력과 애욕이 넘친다. 돈 쥬앙과의 상담이 시작되고 잭은 관성으로 이어가던 부인(페이 더너웨이)과의 성관계를 새롭게 바꾸려는 의욕을 불태운다.
그들에게 주어진 상담 프로그램이 끝나갈 때쯤 잭이 돈 쥬앙의 실제 가족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가 말한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고, 사랑에 실패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잭은 실망하지도, 돈 쥬앙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상담시간을 기다리며 설?던 기억을 떠올리고, 술탄의 여인들을 상상하며 온몸이 깨어나는 회춘(回春)의 기적을 선물 받은 잭은 부인, 그리고 돈 쥬앙과 함께 그가 살았었다는 에로스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영화는 청춘스타 조니 뎁과 노년의 대배우 말런 브랜도가 함께 출연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한 청년의 망상이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발칙한(?) 설정의 영화임에도 20대 초반의 뎁이 전 세계 여자들을 유혹했다는 설정만큼은 꽤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년의 성(性) 무용담을 관조하는 노인 역을 연기한 브랜도의 표정에는 세월의 인장이 비쳐 왠지 서글프고 절절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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