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 북한산 석탄판명·업체 사법처리에 10개월 소요
진룽호 러시아産 확인엔 3일 걸려…부실·지연수사 논란
북한산 석탄 러시아항에 하역
제3 선박에 싣고 원산지 위조
대금거래 흔적 남기지 않으려
석탄으로 중개료 물물교환도
고유지문 있는 석유와는 달리
성분으론 석탄산지 확인 어려워
새 판별방안 마련 필요하지만
수사 신뢰도 확보도 선행돼야
북한산 석탄 위장 수입에 따른 파문이 정치권에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산 석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사태 재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북한산 석탄을 위장 수입한 업자들이 동원한 원산지 확인 서류 조작 등의 수법은 향후 비슷한 사건 수사에 참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산 석탄을 판별할 수 있는 방안이 확립되지 않으면 수사 장기화, 의혹 제기, 문제 선박들의 지속적인 운항 같은 논란의 재발은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세청은 지난 1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71호에 위배되는 4건의 북한산 석탄 반입을 비롯해 총 7건의 북한산 석탄 및 선철 부정 수입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부실 수사 의혹과 관련해 조치 지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의혹과 논란은 문제의 석탄이 북한산임을 판명하고 수입업자 및 업체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 데 10개월이란 긴 시간이 소요됐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조기에 북한산 석탄임을 확인하고 수입업자나 업체를 사법처리했다면 논란이 확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김영문 관세청장은 14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기본적으로 산지별 석탄의 성분이 어떤지 그게 이미 확보가 돼 있어야 (석탄 출처 판별이) 가능하다”며 “그런데 석탄은 그게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북한산 석탄에 대해 “그런 기준 자체가 없다”며 “러시아 석탄은 열량이 높지만, 북한은 낮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걸로만 입증되는 건 아니다”고 덧붙였다.
특정 석탄이 북한산인지 규명하는 방법과 소요 시간에 대해 관세청이나 전문가들의 주장은 엇갈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광물 전문가는 “석유는 산지별로 ‘고유지문’이 있어 구분이 가능하지만 석탄은 산지, 채광 시기, 채광 심도에 따라 성분이 변하고 고유지문도 없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며 “성분 분석만으로 석탄의 산지를 단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관세청도 이번 수사를 통해 문제의 석탄이 북한산임을 밝혀내고 이들이 북한에서 러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넘어온 이동경로를 확인한 데에는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선하증권, 상업송장 등 무역 관련 서류와 관련자들의 휴대전화 채팅 내용, 수첩, 녹취 파일, 진술 등이 단서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 같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다 보니 수사에 10개월이나 걸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결국 새로운 방법을 찾지 않는 한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재연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인 4일 한국 경북 포항신항에 입항한 진룽호에 실려 있던 석탄은 3일 만에 러시아산으로 판명됐고, 진룽호는 관세청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른 한국 정부의 입항 금지 조치가 이뤄지기 불과 나흘 전인 7일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당시 관세청과 외교부는 “이번에 진룽호에 실린 석탄의 통관 서류 등이 확실해 북한산 석탄 반입의 혐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관계 당국의 의지에 따라 석탄의 원산지가 북한인지 러시아인지가 신속히 규명될 수도 있다는 방증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외교부와 관세청 등은 향후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이 재발할 것에 대비해 북한산 석탄 규명 기간을 최대한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관세청은 “우범 선박에 대한 선별을 강화하는 한편, 필요 시 관계기관이 합동 검색하고 출항 시까지 집중 감시할 것”이라며 “우범 선박·공급업자·수입업자가 반입하는 물품에 대해서는 검사를 강화하고 혐의점이 발견될 경우 즉시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을 통해 북한산 석탄 위장 수법이 일부 드러난 만큼 향후 유사 사건 수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관세청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이번에 북한산 석탄 등을 부정 수입한 A(여·45) 씨, B(56) 씨, C(45) 씨 등은 지난해 8월 5일 유엔 안보리가 북한산 석탄을 전면 금수 품목으로 지정한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하자, 위장 수입을 통해 북한산 석탄을 계속 들여오기로 했다. 관계 당국은 북한산 석탄 등에 대한 금수 조치로 거래가격이 하락하는 바람에 부정 수입을 통해 국내에 반입할 경우 그 매매차익이 크기 때문에 이들이 대북 제재 위반임을 알면서도 북한산 석탄을 불법 반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A 씨 등은 북한산 석탄 등을 러시아 항구에 일시 하역한 뒤 제3의 선박에 바꿔 싣고 원산지증명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국내 반입을 시도했다고 관세청은 설명했다. 세관에 해당 석탄이 러시아산인 것처럼 위조된 원산지증명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원산지증명서 위조뿐만 아니라 북한산 석탄을 제3국으로 이동시키고, 이 과정에서 운송 선박을 교체하는 수법도 드러났다. A 씨 등은 지난해 4~8월 북한 송림항, 원산항, 청진항 등에서 러시아 나홋카항, 홀름스크항으로 옮겨진 북한산 석탄 3만3028t을 같은 해 4~10월 한국의 당진항, 포항항, 인천항, 동해항 등을 통해 들여왔다. 제3국 항구를 거쳐 배에서 배로 화물을 옮겨싣는 환적을 거쳤기 때문에 북한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석탄을 이동한 선박은 모두 달랐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 13일 홀름스크항에서 포항항으로 들어온 북한산 석탄 5000t은 리치글로리호에 실려 왔지만, 이에 앞서 북한에서 러시아로 옮겨질 때에는 유유안호라는 선박에 실려 갔다. 이런 환적 과정에서 북한산 석탄의 원산지증명서는 ‘러시아산’으로 위조됐고, 일부 석탄은 원산지증명서 제출이 필요 없는 ‘세미코크스’로 품명이 거짓 신고됐다.
석탄 대금이 오고 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들은 중개수수료를 석탄으로 받는 물물교환 수법을 이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관세청은 이들이 북한산 석탄을 반입하면서 대금을 지급한 기록이 외환 전산망 등에도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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