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여성 캐릭터의 강화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김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배우 하지원이 연기한 그 유명한 ‘길라임’부터 김정은, 김하늘, 김고은 등이 제 몫을 해줬지 않냐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축은 남성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도깨비’ 속 도깨비, ‘상속자들’ 속 재벌 상속자, ‘신사의 품격’ 속 신사 모두 남성이지 않나? 그래서 ‘미스터 션샤인’도 ‘미스터’에 큰 방점을 찍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달랐다.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김태리 분)과 쿠도 히나(김민정 분)는 굳이 ‘여’주인공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을 만큼 큰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품 전체를 이끌어가는 키메이커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전국 평균 시청률 13.4%를 기록한 12일 방송 분에서 고애신과 쿠도 히나가 마주 앉아 카스텔라를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백미’였다. 두 사람은 이완익(김의성 분) 집에서 마주친 후 격렬한 접전 끝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후 빵집에서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촘촘하게 폐부를 찌르는 칼이 박혔다.
히나는 “드세요 자연스러워 보이려면”이라며 카스텔라를 썰어 권했고, 카스텔라를 먹으면서 애신은 “칼을 잘 쓰던데”라고 물었다. “펜싱이라는 검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총에 익숙하시던데”라고 히나가 맞받아쳐 묻자 애신은 “총이 가까이 있었을 뿐이오. 검술은 왜 배우는 거요”라고 질문했다. 하지만 히나가 “절 지키려고요. 애기씬 무엇을 지키십니까?”라고 통역관 문서를 가져간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자 애신은 “그 집엔 왜 간 거요”라며 화제를 돌렸다. 더욱이 “저 하나 지키려고요. 애기씨는 왜 가셨습니까?”라는 히나의 거듭된 질문에도 애신은 얼버무리며 답을 말하지 않았다.
히나가 특유의 웃음과 함께 “일절 대답을 않으시네. 귀한 애기씨 입술이 터진 건 뭐라 둘러 대시려나”라고 일침을 던지자, 애신이 “아무도 내게 묻지 않소. 감히”라며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드리웠던 것. 하지만 히나는 아랑곳없이 “제가 묻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면서 서늘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어 애신은 히나에게 “약점을 잡았다 생각지 마시오.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잡았을 수도 있으니”라며 경고를 날렸고, 히나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애기씨도 저도 양날의 검을 잡고 있거든요”라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드라마 속에서 이를 연기하는 배우가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오버스러운’ 연기가 작품 분위기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결국 두 배우의 존재감은 김 작가가 부여한 것이다. 조선의 명운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두 여인에게 큰 힘을, 아니 짐을 지운다. 그러나 두 캐릭터는 결코 과하지 않다. 각자의 방식대로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매끄럽고, 이 역할을 소화하는 두 배우인 김태리와 김민정의 연기력은 탁월하다.
이 모든 판의 설계자는 김은숙 작가다. 분명 ‘미스터 션샤인’은 김 작가의 진일보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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