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에게 쌀을 먹인 남자 / 다칸 조센 지음, 김영란 옮김 / 글항아리

고령화와 인구 감소, 산업 쇠퇴 등으로 인해 지방 도시가 아예 사라지는, 이른바 ‘지방 소멸’은 우리에게도 코앞에 닥쳐온 문제다. 지방 소멸의 과정은 보통 ‘도넛 현상’으로 설명된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심은 공동화되고, 지방 도시는 인구 감소, 도시 가치 차별화에 실패하면서 환경과 경제, 생활 등에서 낙후를 거듭하다 결국 소멸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의 한 공무원이 노인들만 남아 해마다 인구가 줄어들고 경작지가 급감해 ‘한계 취락’으로 취급되던 작은 시골 마을을 지방 소멸의 위기에서 어떻게 구해냈는지를 다루고 있다.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겸비한 계약직 공무원이 저자이자 이 책의 주인공. 책의 내용은 그가 마을을 구하는 과정의 무용담이다. 저자는 연평균 가계 소득 87만 엔에 불과한 시골 마을을 경제적으로 어떻게 일으켜 세웠는지, 쇠락해가던 지역 공동체를 어떻게 일으켰는지 등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기발한 이벤트를 수시로 진행하면서 뉴스거리를 제공하고, 기자들을 불러 알리면서 마을과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이를테면 마을에서 수확한 쌀을 로마 교황청에 제공한 뒤에 ‘교황이 먹는 쌀’이라고 홍보했고, 인공위성을 활용해 구획별로 벼의 단백질 함유량을 조사해 이를 대대적으로 알렸다. 지역 주민을 설득해 도시의 젊은이들을 불러들였던 그의 시도는 벤치마킹돼 일본의 ‘유휴지 빈집 정보은행 제도’가 됐다. 일의 내용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과정도 여느 공무원과 달랐다. 회의를 하지 않고 기획서를 없앴으며 상사에게도 사후 보고를 고집했다. 이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의 영웅담은 일본방송 TBS의 ‘나폴레옹의 마을’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저자가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건 ‘무엇이든지 하라’는 것. 축적된 실패도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자주 쇠락한 마을을 인체에 빗대 설명한다. 몸에 상처가 나면 가장 먼저 재활운동을 통해 혈류부터 확보, 영양을 필요한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한계 취락에 이를 대입하면 재활은 ‘교류’이고 혈류는 ‘화폐’가 된다는 것이다. 재활, 즉 교류를 통해 사람을 마을로 모으는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마을 만들기’와 관련한 책의 출간이 근래 눈에 띄게 늘었다. 지방 소멸의 극복이 일본에서의 관심사인 까닭도 있지만, 우리도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겠다.

일본은 지난 2006년에 65세 인구가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한국은 그보다 20년 늦은 2026년에 초고령 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일찍이 겪어 보지 못했던 빠른 속도의 노령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 소멸과 도시 쇠퇴에 대한 일본의 경험이야말로 우리에게는 소중하다. 277쪽, 1만4000원.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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